고백하는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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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8장19-27절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09-14 14:16
조회
29
 



 

요한복음 18장 19-27절
"떠나가는 사람들!"

오늘 우리가 19절에서 읽었지만 사실 18장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에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마음에서 들으시면 이해와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을 두 번 부인합니다.
이미 17절에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는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영화에서 보듯이 주인공에게 충성하는 무용담으로 보면 좋은데
클라이막스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는 우리에게 썩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인생에서 이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반의 이야기는 네 복음서가 약속이라도 하듯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죠.
네 복음서는 각각 성격과 언어와 내용이 다릅니다. 예수의 인생을 담아내지만 여기저기 상이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동일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오천 명을 먹인 사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등은 네 복음서에 그대로 나오는데, 베드로 또한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아주 수치스런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담아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더구나 네 복음서가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이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베드로의 배반을 엮어내고 있다는 것은,
이와 같은 예수의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베드로의 배반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
그만큼 베드로의 배반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굉장합니다.
그렇다면 왜 네 복음서 저자들이 동일하게 이 수치스런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베드로도 결국은 예수를 사랑했지만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해석을 함으로서 우리가 위안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죠. 나도 저랬을 것이라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며, 부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인간의 연약성을 말하고 무력함을 나타내서 독자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 합리화 시키며,
때론 죄를 지어도 된다는 위로성 발언을 위해 네 복음서 저자가 베드로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너무 얕게 보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맥락에서 이 이야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18장은 십자가 이야기에 들어가는 서론부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컨텍스트가 18장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인간의 간섭, 인간이 끼어드려는 것이 철저히 배제되고, 하나님만이 십자가를 만들어내신 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자격이 없는 베드로가 끼어들려고 하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넣으려는 베드로의 구도가 이 안에 있습니다.
내가 그다. 그러니 나를 잡아가고 이 사람들은 풀어줘야 한다 약속하라 말씀하신 예수.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배제시키고 하나님인 우리의 일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베드로는 더 나가서 15절에, 예수를 따라갑니다.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셨는데도.
십자가는 예수만이 엮을 수 있는 이야긴데 자꾸 인간이 들어가려 한 것이죠.
본문을 꼼꼼히 읽으면, 다른 제자는 누구겠습니까?
다른 한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포석으로 둔 것 아닐까요?
그는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갈 위치나 자격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어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뜰 밖에 서서 있는데, 다른 제자가 와서는 들여보내준 것이죠.
그가 없었다면 베드로는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대제사장의 집까지 따라올 이유가 없었는데 무리한 것입니다.
인간의 힘을 빌어서라도 들어가야겠다고 한 것.
어찌보면 투철한 사랑, 집착적인 사랑이다. 이를 나는 독단적인 종교성이라 봅니다.
예수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의,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랑입니다.
자기의 종교성을 관철하기 위해서, 내가 끝까지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간은 더 들어오면 안 돼! 하는 중에도 베드로는 인간의 자기사랑, 자기가 만들어낸 종교를 가지고 십자가 깊숙이 들어가려 했다는 것이죠.
베드로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라 했습니다. 아무 제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관철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죽음 앞에서는 그러지 못했다는 거죠.
이것이 18장 중반부가 우리에게 던지는 저자의 메시지 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그다 하셨다는 것.
18:5, 6, 8절에서 그랬다.
이는 I am입니다. 내가 나다. 너희가 찾는 그 사람이 나다.
그런데 이 세 예수의 발언을 짓뭉개듯이 베드로의 세 발언이 나옵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예수는 에고 에이미, 내가 나다.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난 아니다! 이렇게 세 번 말합니다.
원어에는 정확히 대칭구도로 나옵니다.
내가 나다. 저 백성을 끝까지 사랑할 그 메시아, 그게 나야! 함에도
베드로는 나는 저 사람 필요없다 하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긴데, 이 안에 인간적인 사랑을 자꾸 엮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사랑한다고 했었습니다.
종교적인 사랑, 극단적인 사랑을 베드로는 포기합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냐 했을 때, 당신이 아십니다. 합니다.
마치 당신이 주신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의미지요.
내가 깨닫고 보니 당신이 주신 사랑이 아니면 곁단코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것이 요한복음 마지막의 아름다운 결론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부르시는 말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호세아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태마가누가는 이 세 번 부인하는 18장에 관해 그대로 말하는 것이 통곡하여 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엔 없습니다.
베드로의 인간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대적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예수를 이해하려는 것.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다른 곳은 심히 통곡했다 하는데 이는 베드로에게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심령을 찌른다는 것.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를 너무 인간화 시키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시고 하나님만이 만들어내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인데,
그 안에 인간적인 것을 쪼개어 넣으려 했던 것, 그것이 베드로의 잘못입니다.
내가 가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이 여러분의 영혼에 가득 넘쳐서,
당신이 주신 사랑이 내 영혼 속에 있습니다 하는 고백이 우리 삶 속에 울려퍼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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