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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8-16절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11-03 14:16
조회
101


 

 

요한복음 19장 8-16절 주일강해설교

지난 시간에 우린 7절에 나오는 법대로 하라, 법대로 살자 하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사람들은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고 시민사회를 만들고 올바른 종교생활을 하기 위해 법을 만듭니다.
교회 안에도 신학이라는 교리를 통해 바르게 믿기 위해 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구조장치입니다.
문제는 법이 갖는 인격성을 잃어버릴 때 그 법은 말 그대로 이념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념이 된 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법이 아니라 법 그 자체를 위한 법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하나님 앞에 살기 위해 법에 죽었다고 말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요 19장에 나오는 유대인들,
이들은 말 그대로 법대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바울이 예수를 영접하기 이전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법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집단행동을 합니다.
집단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나가길 서슴치 않고, 사람 죽이길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마치 진리를 사수하는 것만 같은,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행동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를 죽이라 하는, 사람 죽이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를 보며 거리정치라 하는데, 요19장을 통해 이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을의 부추김에 선동되어 유대 백성들은 스스로가 심판할 수 있다는 쾌감에 사로잡혀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해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를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배고플때 빵을, 목마를 때 물을, 죽은 자를 살린 분이 예수였습니다. 몰랐던 게 아닙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19장을 보며 묵상할 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 이들 가운데는 법과 진리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구나..
진리가 무엇이냐.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진리는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대인들은 법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게 오늘 19장이 놓여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 역시 법이 우선이냐 진리가 우선이냐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싶습니다.
먼저 13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재판석에 앉아있더라."
재판석에 앉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빌라도입니다. 한글 성경이 그렇게 번역했죠.
그런데 최근 외국성경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예수를 카바야라하는 재판석에 앉혔다. 그래서 예수가 재판석에 앉아있다'고 번역하는 성경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왜 그런가요?
성경학자들이 연구하다보니, 빌라도가 끌고 나와서 자기가 앉은 게 아니라 예수를 앉혔다는 게 저자의 문맥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라고 보는 겁니다.
사실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습니다. 주격이 3인칭이기 때문에 자동사로도, 타동사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기를 싫어하는 전통이 있는 것이 문제지 내용으로만 보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와 예수를 재판석에 재판관으로 앉혔다고 할 수 있다면 19장, 본문의 컨택스트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법이 재판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요한복음 저자는 우리 모든 심판은 진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이 법을 가지고 심판하려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법 안에 사람이 갇히는 걸 저자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누구입니까? 진리는 예수입니다.
법이 우리를 인도하는 게 아니라 진리인 예수가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예수님만이 내 인생을 재판하고 정죄하시고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저자가 우리에게 말 하고 싶은 겁니다.
또 하나, 그럼 진리 대신 예수, 진리 그 자체가 재판석에 앉을 때 진리는 어떻게 심판합니까?
법이 재판하면 법대로 합니다. 그래서 사람 죽이는 게 전혀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살리는 게 목적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가 이 세상의 참된 심판주로 앉으셨습니다. 그분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4절, 이 날은..
갑자기 저자는 시간을 규정합니다. "이날은 유월절의 준비날이라"
예수께서 심판석에 앉으셨습니다. 우릴 재판하시고 사정을 심판하시러 앉는 순간에 그날은, 유월절의 준비날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겁니다.
예수는 언제 죽으셨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를 보면 예수는 유월절 당일에 죽으셨습니다. 유월절에 잡히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유월절 하면, 오늘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목요일 저녁부터가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이 유월절 낮입니다. 그래서 마, 막, 눅은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하자 하셨을 때 오늘 식으로 목요일 저녁에 드셨다고 한 겁니다. 그리고 밤에 기도하시다가 금요일 새벽에 잡혀가서 심문을 받으시고 12시 정오 경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증언하죠.
즉 실질적으로 유월절 저녁은 목요일 저녁인 겁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렇게 계산 안 합니다. 하루 더 앞날을 생각합니다. 수요일 저녁즈음에 식사하시고, 목요일에 재판을 빌라도 앞에서 받는다고 본 겁니다. 이걸 기억하고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유대사회, 유대인들은 목요일 오후가 되면 다 양을 들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성전에서 양을 잡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분배를 받아서 문설주를 바르고 유월절 식사를 합니다.
그러면 대제사장들은 엄청 바쁜 시간입니다. 목요일 오후인데.
그런데 이들이 지금 성전에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총독관저에 나와 예수를 죽이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하나, 대제사장들이 진짜 성전에서 어린 양을 잡아죽여야 하는 목요일 오후에, 실질적으로 예수가 잡혀서 죽는다는 것. 요한은 이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나오지 않는, 예수의 소개를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 합니다. 그 양이 목요일 오후시간에, 대제사장들이 양을 잡아야 할 시간에 잡아죽인 예수라는 겁니다.
우리 인생의 재판관이 되신 예수, 그분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재판하신 겁니다. 사실 유대가 예수를 심판한다 하셨지만,  예수가 심판하시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놀라운 역사가 이 안에 있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은 착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심판한다고.
그리고 당신 또한 스스로 재판 당하셔서 몸을 내어주셨다는 겁니다. 이게 진리가 행하는 재판방식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그 유대인을 위해서도 죽으신 걸까요?
본문에서 예수는 말하길 총독, 당신보다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이들의 죄가 더 크다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묵상해봅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무얼 느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우린 세상으로부터 구뤈받아야 해. 세상은 나쁜 곳이야. 그렇게 설교하지만, 요한저자는 세상 죄를 감당하는 예수가 도살당하는 모습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은 물론, 세상 자체를 구원하시는 예수를 읽어야 하는 겁니다.
세상의 원리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도 옳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처럼 우주적 원리를 가진 곳에서 말하는 예수의 구원은,
악하고 더러운 세상 가운데서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조차 구원하시는 예수입니다.
당신 스스로가 진리시지만, 자기 자신을 심판의 도구로 내어주시고, 당신을 도살해가시는 이런 예수의 메세지를 통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심판하시는 방식대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즉 진리의 방식대로 심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를.
우리도 때론 예수를 빌라도에 넘길만큼 죄를 짓는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우리까지도 품으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가오고 계십니다.
이분을 영접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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