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서재

고백하는 서재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31-37절 "하나님을 살해한 사람들"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1-06 13:05
조회
35


요한복음 19장 31-37절 강해설교(1)
하나님을 살해한 사람들


200105김산덕 담임목사


오늘은 2020년 부산고백교회가 드리는 첫 예배입니다. 오늘 하나님과의 교제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들 위에 한 해를 살아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은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에 함께 묵상하며 은혜의 깊음을 함께 나누었던 28-30절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삶의 마지막 부분, 그분의 죽으심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하게 생각을 해 본다면, 죽으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성경은 떠남이 아니라, 건넴으로 그분의 삶의 마지막 부분을 그려내었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은 옆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을 건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30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는 단순히 떠나가고 모든 것이 끝나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옆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즉 예수께서 자기 곁에 붙어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겨준다는 뜻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십자가 곁에 서서 지켜보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건네주는, 자신의 힘을 건네주는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당신은 그분께서 자신의 영혼을 건내주신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부터 건네받은 그분의 영혼이 살아있는 곳이 바로 내 영혼이며, 그 영혼들이 모인 곳이 부산고백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영으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신의 영혼을 건네시는 사건이기 떄문에, 마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하여 여전히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1절은 이러한 예수의 끝이 없는 십자가 죽음 사건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바라보는 관심사를 그대로 드러낸 곳입니다. 31절의 주어는 유대인들 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이 날은 무슨 날이기 때문에,... 치워 달라 하니.” 이 말씀은 신명기 21장 23절에 나오는 율법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말하자면, 구속을 완성하는 십자가 사건 앞에서 유대인들은 오로지 율법 타령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앞에서 선 유대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예수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십자가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율법을 준수해야만 하겠다는 율법적 의에 사로잡여 있음을 보게됩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가득한 십자가 앞에서, 마치 그런 십자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을 느껴봅니다. 요한복음 저자가 말하는 십자가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율법엄수주의자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십자가의 주변 사람들, 주인공의 십자가 그늘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공관 복음서 저자들도 아주 명확하게 잡아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서는 27장 39절에 그냥 “지나가는 자들”(파라뽀레우오마이, παραπορεύομαι, 옆에서 죽으러 가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였습니다. 54절에서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면서”(τηρέω, 영적으로 지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과는 대조적입니다.

누가복음 역시 동일합니다. 23장 35절에서,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비웃어면서 말하기를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아냥 합니다. 마가복음 역시 십자가의 주변 사람들을 15장 29절에서, “지나가는 자들”로 등장시킵니다. 그들은 머리를 흔들면 모욕하며, 성전을 헐고 사흥에 짓는다는 자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십자가 그늘에 자신을 내려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 또는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그냥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요?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더라”(마27:39). 여기에 “지나가다”로 번역된 헬라어에 주목합니다. ‘빠라뽀레우오마이’(παραπορεύομαι) πορεύομαι)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빠라(옆) + 뽀레우오마이(여행을 나서다, 가다, 죽다)로 구성된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어역하면, 십자가를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그런 의미가 됩니다. 십자가가 참 많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그냥 십자가를 ‘빠라뽀레우오마이’할 때가 많지는 않은지 묵상하여 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그냥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반드시 세워야 하는 정류소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붙들고, 그 가운데 솟아나는 은혜를 머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올 해는 십자가를 그냥 지나침이 없는 삶을 소망하여 봅니다.
십자가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모욕입니다.
전체 25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5
New 2020년 새해 부산고백교회 중보기도
confessing | 2020.01.26 |
confessing 2020.01.26
24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31-37절(2) “꺾임을 당하지 않는 축복”
confessing | 2020.01.12 |
confessing 2020.01.12
23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31-37절 "하나님을 살해한 사람들"
confessing | 2020.01.06 |
confessing 2020.01.06
22
주일구약강해설교 사무엘상 1장 9-11절 “엄마의 믿음”
confessing | 2019.12.15 |
confessing 2019.12.15
21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28-30절 “다 이루었다”
confessing | 2019.12.08 |
confessing 2019.12.08
20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23-27절 “자기 집에 모시니라”
confessing | 2019.12.01 |
confessing 2019.12.01
19
주일구약강해설교 사무엘상 1장 1-8절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confessing | 2019.11.17 |
confessing 2019.11.17
18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17-22절
confessing | 2019.11.10 |
confessing 2019.11.10
17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8-16절
confessing | 2019.11.03 |
confessing 2019.11.03
16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1-16절(설립7주년)
confessing | 2019.10.27 |
confessing 2019.10.27
Call Now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