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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31-37절(2) “꺾임을 당하지 않는 축복”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1-12 16:38
조회
45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31-37절(2)


“꺾임을 당하지 않는 축복”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이 본문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지난 주 말씀드린 것을 다시 상고해보십시다.
유대인들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정황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중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죽음과 사형, 저주의 형틀로 사용되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께서 율법의 완성, 사랑의 심볼 화해의 성취로 완전히 뒤바꾼 것이었죠.
그 그늘 안에서 유대인들은 곰곰이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십자가가 유대 안에서 지켜온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었구나! 그러니 우리 옷매무새를 고치고 방향을 틀어야 했구나! 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들은 여전히 율법수호로 가득 차 있었죠.
그게 바로 31절, 안식일 준비하는 그들의 마음인 겁니다.
십자가라는 엄청난 화해의 사건이 벌어지며 막힌 담이 헐어지는 화해의 장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런 것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율법주의 말입니다.
이를 요한저자는 31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백부장만 나오고 요한과는 차이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19장 31절을 읽을 때는 백부장의 사건과 대조하고 견주어서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32절로 넘어갑시다.
32절부터의 이야기는 예수의 다리를 꺾지 않았다는 사건입니다. 이 또한 다른 복음서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걸 강조하고 싶다는 거죠.
다리를 꺾지 않았다?
요한은 어린양의 신학입니다. 보라!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양은 예수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가봅시다. 어린양은 출 1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지시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첫 아들, 장자를 죽이는 사건이죠.
마지막에 가서는 이 사건을 너희가 기념하라 하십니다. 유월절 사건 말입니다.
어린 양을 잡아 문설주에 피를 바르면 장자가 죽지 않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대대손손 지키라 하십니다. 유월절기죠. 양을 먹을 때 그 양의 뼈를 꺾지 말라 하셨습니다. 12:43입니다.
유월절 사건의 포인트는 그들이 양을 잡고 빵을 먹을 때마다 반드시 양의 뼈를 꺾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고, 이를 감사하는 행위이죠. 이는 구약성경에서 계속해 축복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사회자가 읽은 시34:22 주변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시고 그 중에 하나라도 꺾이지 아니하는 축복을 주겠노라..
뼈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표징인 겁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43장, 상한 갈대 꺾지 아니하신다는 말로 또 등장합니다. 그러니 이는 구원의 축복입니다. 그것이 요한저자의 입장에서는 꺾지 않는 축복이 예수로 인해 완성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요한저자가 십자가 사건 속에 이 사건을 기록한 겁니다.
바울은 로마서 안에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함 없다 합니다. 꺾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 다리를, 인생을, 죽음을 꺾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겁니다.
이 단어를 찾아보니 신약에 네 번 나옵니다. 세 번은 요한복음이고 나머지는 마태복음입니다. 상한 갈대 꺾지 않는다는 구약 인용입니다.
이 단어는 사실 합성어입니다. 근원을 올라가보니 포도부대가 찢어진다는 말이 나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사람을 내동댕이 친다 하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산산조각을 낸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꺾는다는 말은 나를 내동댕이 쳐서 갈기갈기 찢어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꺾이지 않는다는 말은요? 그럴 일이 절대 없다는 겁니다. 예수가 그것을 완성하셨다는 거죠. 바울의 말처럼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죽음이 확인사살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죽음의 확인이 바로 꺾는 행위인데 그것을 안 하고 넘어갔지 않습니까? 확인사살당하지 않은 우리 인생은 어떻습니까? 33-34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그 배에서 피와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가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예로부터 피와 물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세례와 성찬을 뜻합니다. 틀림없는 해석입니다. 예수가 세례와 성찬의 원천이라는 거죠. 우리의 세례와 성찬은 예수로부터 나오는 물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바로 주님의 축복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교리적인 해석보다 요한복음에 의한 해석을 해봅시다.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예수를 믿는 사람, 그를 믿고 그의 인격과 한 몸을 이루는 사람의 배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즉 예수그리도에게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겁니다. 예수에 참여하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릴 찔러죽이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생수의 강이 나온다는 겁니다.
생수의 강은 7장에 나옵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샘 솟듯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꺾임 당하지 않은 우리 속에서 성령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득한, 성령충만으로 삶을 사는 자의 모습은 35절과 같이 증언하는 삶입니다.
내 인생을 투자해 목숨을 걸고, 이것이 진리다! 하는 사람입니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는 사람은 증언의 삶을 사는 사람인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2020년은 예수로부터 나오는, 그 안에 사는 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증언으로 사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증언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축복, 물론 우리는 죽음의 확인을 당하지 않는 축복 가운데 있습니다. 꺾이지 않는 삶 말이죠. 그에 더 해서 날마다 내 입으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증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우리가 돌아본 우리네 길은 어떤 인생길이어야 합니까? 성경의 조명을 받아 살아온 길이어야 합니다. 본회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있으므로 꺾이지 않는 삶을 살고, 날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을 사는 우리고, 그래서 증언하는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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