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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주일강해설교(출17:8-16), "모세의 팔을 들어주는 사람"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06-16 13:17
조회
114


주일구약설교190616 출17장 8-16절

오늘은 3주, 부산고백교회는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신구약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구약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왜 만드셨는지, 왜 창조하셨는지, 택하셨는지, 또 그런 백성이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백성의 역사 이야기, 인생의 이야기들을 주욱 적어놓은 게 구약성경입니다.
삶의 이야기.
어렵자면 어럽지만 풀면 택함 받은 사람의 사는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인생의 교훈을 얻는, 하나의 반면교사와 같은 것입니다.
출애굽기라는 것은 출애굽, 애굽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애굽은 이집트죠.
왜 그들이 애굽에 갔지요? 하나님을 어기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세상엘 갔고, 3-400년을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겨 식량을 주셨고..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을 노예의 삶에서 구출하고 꺼내셨는데, 이들은 해방이다! 하고 나왔는데, 영 그렇지가 않았죠.
자유함, 해방,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로 살겠구나! 하며 복된 삶을 살아야 했는데 못 그랬다는 말입니다.
왜? 출애굽 하자마자 나타난 문제, 홍해 때문였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죽이려 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는 진퇴양난.
구원을 받읐으면 아픔과 전쟁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스라엘은 마음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래서 14장은 그들의 원망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 시켜주셨을 때는 좋다 했다가 이젠 원망한다는 거죠.
그때에 하나님께서 14:14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하십니다. 가만히는 샬롬이에요. 피스. 내가 싸우겠다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가만히 보니 미완료로 끝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계속해서 너희를 위해 싸울거야 하시듯이요.
비록 구원받고, 출애굽 해서 해방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홍해와 같은 곤란함, 고난, 고통 문제들이 계속해서 너희를 못살게 굴 것이고, 힘들게 할 것이라는 말이 그 한 단어 안에 내포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하셨다는 겁니다.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닿았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당장 원망을 하죠.
그럼 하나님의 백성, 왜 하나님이 이들을 택하셨는지를 여기서 봐야 합니다.
택함 받은 백성임에도 여전히 우릴 엄습해오는 문제들. 그걸 그대로 기록한 게 구약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초현실주의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그럼에도 여전히 인생의 문제로 싸워야 하는 게 삶의 숙제입니다.
르비딤에서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물을 주셨지요. 그리고 나오는 게 오늘 이야기입니다.
아말렉.
성경사전을 보면 에서의 후손이고 사해의 남쪽에서 가나안에 걸쳐 살고 있던 거인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거인. 엄청 싸움을 잘 하겠죠. 이런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싸움을, 한 번도 전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들이 가지 건 창칼이 아니었고요. 역사적으로만 보면 그래요.
그런데 아말렉이라는 거인이 나타났고 싸움을 걸었다는 거죠.
우리 인생이란 이런 거 같습니다.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
갑자기 내 인생에 재앙이 나타나고. 내 머리가 하얗게 되어 우왕좌왕하고.
분명 이스라엘도 그 전에, 홍해 때에 하나님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럽니다. 너희는 가서 싸워라. 나는 산에 올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설교하지만, 왜 모세는 직접 싸우지 않았을까요?
그는 전략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이는 자기가 손을 드는 것이었죠.
그럼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이런 인생의 엄청난 문제에 다달았을 때에 모세는 지팡이를 들었다는 겁니다.
지팡이를 들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모세는 알았다는 겁니다.
삶의 방식을 터득한 거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경험이 있는 것은 잘 해쳐나가죠. 그러나 없을 때는 다툽니다.
인생에는 그런 것들이 우릴 공격하고 힘들게 합니다.
이를 헤쳐나갈 전략, 모세는 알고 있었다는 거죠. 바로 손을 드는 것.
손을 들다. '룸'이라는 단업니다. 14:4에도 나옵니다.
지팡일 들고 손을 내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졌죠.
'아,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건 하나님 능력인데, 이게 나오는 방식은 지팡이를 드는 거구나!'
똑같은 '룸'이 18장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산꼭대기 올라간 모세가 든 손. 그 순간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내리면 졌고.
손을 든다는 건 무슨 뜻이죠? 누군가는 기도라고 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면 이길 수 있다고 설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죠. 정말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니까 손을 든다는 말은 자기를 바치고, 제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것.
구약에는 제물을 바친다. 이를 '룸'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것이죠.
이는 오로지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주 쉬운 말로 예배 드리는 거죠. 그만큼 예배는 중요합니다.
앉았다 가는 게 아니에요. '나는 당신 겁니다. 당신이 나를 택하셨고 그 방식대로 살겠습니다' 하는 걸 내 입과 몸과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예배에요.
그런 예배를 오늘 이 자리에서 드린다고 하면, 여러분이 한 주를 살 때 아말렉과 같은 것이 엄습할 때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아말렉, 에서의 후손이고 사해에 산 거인족이라고 했지만 요즘 학설로는 안 그렇습니다. 요즘 학자들에게 아말렉은 수수께끼입니다.
16절을 보세요.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이는 영원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싸우리라'와 마찬가지로 대대로, 영원히.
내가 아말렉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등장할지 모르며 대대로 우릴 대적할 것이라는 말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합니다.
출애굽해서 좋은 걸로 끝이 아니라, 아말렉의 위협 또한 놓여있다는 것을 알라는 거죠. 그래서 주님 오실 때까지 끊임 없이 아말렉과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싸워야 하는 백성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우릴 대신해 싸우시겠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단지 손만 들라는 것이죠.
자신을 온전히 바치라는 겁니다. 그러지 못할 경우 16장, 더러는 아침에 두었더니 벌레가 생겼습니다. 생기다. '룸'입니다. 내 맘대로 손 들고 살고 싸우겠다는 것. 그건 여러분 인생에 벌레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힘든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팔을 들고 능력 안에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예배한다면 승리가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14절, "이를 책에 기록해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게 하라."
귓구멍에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드니 이기더라' 하는 말을 딱 놓아두라는 뜻입니다. 이는 계속해서 듣고, 기억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멸망했죠.
우리는 구약을 읽으며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사업, 인생, 공부에 있어 여전히 아말렉은 복병으로 등장합니다.
그럴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손을 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승리했음을 귓전에 두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이 예배가 아니고 뭘까요.
우리 안에도 아말렉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온전히 주님 앞에 우릴 내어놓는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예배로 한 주를 사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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