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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8장 1-11절(II)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07-14 15:16
조회
89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8장 1-11절

“끝까지 자기 사람을 챙기는 예수”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요한복음 18장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14-16장은 고별설교고 17장은 고별기도, 바로 대제사장의 기도입니다.
그 설교와 기도의 중심주제는 뭐라고 했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의 의지, 약속,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리라는 것이 고별설교와 기도의 중심 주제고 내용입니다.
이제 18장으로 넘어오면 그렇게 예수가 약속하셨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시고 보여주시느냐 하는 그 실제적 행동이 기록되어있고, 지난 주일에는 18장 1절에 포커스를 맞춰 나눴습니다.
1절에는 아주 중요한 단어들이 나왔었죠.
“나오시사”, “기드론”을 지나다, 기드론이 가진 의미, 또 “동산”을 “들어가다” 등은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고난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한 특유한 단어입니다.
요한은 다른 곳에서 안 나오는 이런 단어를 통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거죠.
그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게 동산입니다. 왜? 18장 1-11절까지의 내용은 사실 동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 동산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걸 증언하고 있죠.
그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동산이란 단어는 다른 복음서에선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곳 말고도 19장에 또 등장합니다.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바로 동산으로 나온단 말이죠.
그럼 예수는 어디로 가신건가 되지요? 십자가 안 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18장 1-11절은 예수가 동산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곧 십작가 안에서 어떤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담아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일어난 사건.
가장 큰 사건은 5, 6, 8절에 걸쳐 나오는 “내가 그니라” 하는 사건입니다.
말이 아닙니다. 사건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일어난 사건 말이에요.
‘에고 에이미.’ 나는 있다. 여기 있는 내가 나야! 여러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 표현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양칠 때 불붙은 떨기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 묻자 답 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이걸 신약성경의 언어로 풀면 에고 에이미입니다.
조금 어렵게,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기계시, 자기 현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을 보이시고 드러내실 때 사용하신 표현이 바로 ‘나는 나다’ 하는 에고 에이미라는 겁니다.
즉 이런 이야기 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동산 안’에 계시다는 것.
바로 십자가 안에 계시다는 겁니다.
십자가 안에 거하심.
그래서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왜? 그 안에서 예수님이 내가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고, 생각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만 많이 생각합니다.
높아지길 원하고, 부자 되길, 권위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그런 하나님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원해왔다는 말이에요. 부자 되게, 가정 잘 되게 해주시는 그런 하나님을 찾고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하나님이 없음에도 우린 기어코 조각해서 만들어 내고야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탑 꼭대기가 아닌 저 깊은 십자가 안에 계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나사렛 예수 어딨느냐. 비아냥 입니다. 촌놈 찾듯이 부르는 거에요.
십자가는 저주입니다. 가장 덜떨어진 사람들 잡아매는 곳입니다.
세상은 절대 그런 장소에서 신을 찾지 않습니다. 궁전 같은 곳에서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요. 그래서 예수를 촌놈 찾듯이 부른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나는 십자가 안에 있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죽음을 맞고 조롱당하는 그 자리에 예수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 예수가,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중세에 종탑이 높이 올라갔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우리에게 성공과 승리, 축복을 주시는구나했습니다.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 영광의 신학.
루터는 이를 비아냥하듯 나타나 하나님은 영광이 아닌 십자가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린 어떤 신학을 간구합니까?
바벨처럼 높이 올라가고 성공해야만 속이 시원한, 모든 것을 점령해야 속 시원한 하나님을 내가 만들고 기도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 에고 에이미 하십니다.
그럼 십자가 안의 예수와 나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를 통해 어떻게 내 삶이 변화됩니까?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6절이다.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십자가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가 넘어집니다. 좌절한다는 뜻이에요.
성공과 양명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는데, 하나님이 십자가 같은 곳에 계신다고? 그런 생각에 넘어지는 겁니다. 현대인에게 십자가의 하나님은 좌절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는 거죠.
나에게 이득이 안 되어서.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믿을 수 없어서.
그런 예수님 믿기, 여러분은 자신 있습니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잘나가는 하나님, 그런 분을 믿고 싶은 게 우리 마음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십자가에 계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만족이 있습니까?
8절,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나를 잡았으니 이들을 풀어줘라, 내가 대신 죽을게 하심이 있습니다.
예수가 양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이 사람은 살려주십시오. 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내가 대신 죽을 테니, 아버지여..
사실 9절은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 말 한 거지만, 그 깊은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사람들을 대신해 죽겠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죽을 테니까 이 영혼들을 살려주십시오.
왜? 9절, 아버지가 내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죽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은 로열티, 의리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예수를 여러분이 만나길 바랍니다.
성공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내어놓더라도 나를 책임져주시는 십자가의 하나님.
그럼 어디서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까?
물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어딥니까?
18:2, 그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던 곳입니다.
동산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는 동산이고, 예수와 함께 모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기도하시고 직접 말씀하시고 다독이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리란 말씀을 계속 하셨습니다. 동산, 십자가에서 말이죠.
계속해서 모이다. 쉬나고. 거기서 쉬나고그, 즉 회당, 공동체, 교회란 말이 나왔습니다.
오늘도 부산고백교회라고 하는 십자가 안에서 여러분은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내 생각, 삶이 좌절되고, 그런 하나님은 안 믿겠다는 좌절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수가 나를 끝까지 책임지시는구나 하는 은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내가 다음 주 부터는 내 삶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예수와 함께 하리라는 다짐을 하십니까, 아니면 복 만을 원하십니까? 후자라면 오늘 말씀은 좌절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감동을 가져다주는 말씀으로 들어간다면 여러분은 보호받는 인생이고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는, 목마름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계십니다. 십자가는 부산고백교회 입니다. 교회를 많이 사랑하시고 이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 나를 책임지시며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게 하신다는 약속이 이 부족한 나에게도 허락되어 있구나 하는 것이 믿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런 은혜 가운데로 나가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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