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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주일강해설교 1장 1-2절, "나는 누구인가"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07-21 15:34
조회
111
 

 



 

 

창세기주일강해설교 1장 1-2절, "나는 누구인가"
김산덕 담임목사님


 

 

 

오늘은 구약성경 창 1:1-2를 가지고 잠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면서 시계바늘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을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때론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거나,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없을까? 모든 것을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 내 인생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때때로 일어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우린 인생이 시작된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젊을 때는 인생의 쓴맛, 고난 고통을 느낄 때 마다 다시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지요.
대개가 그런 마음을 가진 때는 내 인생이 고통당하고 힘들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을 기록한 저자들, 특히 창세기 저자는 그런 마음이 있었나봅니다.
여러분, 오늘은 창 1:1만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는 성경 저자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 이 말을 성경의 가장 첫 서두에 두고 싶어 했을까? 우린 고민해봐야 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그저 태초에.. 라고 나오지만, 원문은 첫 번째, 또는 선택하다 이런 뜻도 있습니다.
베: 전치사, 레쉬트: 처음에. 히브리어는 전치사가 앞에 옵니다. 즉 처음에, 가장 먼저, 처음으로 열매 맺음, 선택 받음 등으로 여러 가지 해석도 가능한데, 아무튼 저자는 이 말을 글의 가장 첫머리로 두고 싶었다는 것이죠.
저자는 시계바늘을 처음으로 돌려놓고 싶었기에 이 단어를 첫 단어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저자는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또 그런 마음이 왜 생겼을까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정확히는 남유다죠. 그들이 그곳에서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낍니다. 나라가 풍비박산 났고 똑똑한 사람들을 수도 바빌론에 갖다 심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이제 정체성의 혼란이 생긴 거에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는 거죠.
옛날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나라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신이 힘이 있어서 이겼다고 여겼거든요. 즉 바벨론의 신이 하나님께 이긴 것이죠. 그러니 왜 우리 하나님이 졌지? 전지전능한 분인데? 하는 의구심이 든 겁니다. 그러다 바벨론에 끌려와보니 엄청난 큰 건물과 신전이 있지 뭡니까.
그러다보니 이 종교가 진짜 종교고, 이 신이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 신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사니까, 정체성에 더 큰 혼란이 오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바벨론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정말 하나님을 사모했던 사람들이 모여, 정말 이건 아니다!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써내려가고, 지금까지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이죠.
특히 창세기가 그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 말씀은 원문대로 하자면, 베레쉬트 다음에 바라가 나옵니다. 동사죠. 이 단어는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내실 때 사용하시는 단어 입니다. 나무로 책상을 만들 때는 바라를 쓰지 않습니다. 나무조차 없는 상태에서 책상을 만드실 때 바라를 쓰십니다. 그런데 외국 말에는 인칭과 수가 들어가요. 바라는 3인칭 단수입니다. 그가 창조하셨다는 뜻이죠. “태초에 그가 창조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이요.
그런데 원문을 보니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들로 나옵니다. 엘로힘. 힘을 상징하는 복수입니다. 신은 복수로 쓰고 동사는 단수로 썼습니다. 이게 딜레마에요. 주어는 복수형, 동사는 단수형.
그러니 이런 단어를 통해 저자는 엄청난 신앙의 고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끌려가니까 엄청난 신들이 즐비했잖습니까?
신들을 신전에 주욱 세워놓고, 가장 센 마르둑을 중앙에 모시고 제사를 드렸어요.
그런 와중에 창세기를 기록한 저자는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신이 우릴 만들었다 하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신들이 만들었다고 너희가 말하는 거, 그래 맞다 치더라도, 하지만 복수형에서 단수형으로 진행됐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고백이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겁니다.
만신이 아니라, 유일신 하나님만이 나를, 세상을, 가정을 창조하셨다는 고백 말이죠.
자기가 가진 창조론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겁니다.
별 것 아니지만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왔나요? 엄마 뱃속?
오늘날 사람은 내가 뭐가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뭘 하고 어떤 직위에 있는지 제일 중요한 이슈란 말이죠.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군가 하는 본질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인생 가운데 되 뇌이고 가야 하는 것은, 내가 어디서 왔고 세상 가운데 왜 창조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 받지 않고는 절대 그런 찬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끌려가고 나서 그런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당시에 여호와도 믿고 바알도 믿고 다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인생이 바벨론에 의해 송두리 채 망가졌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군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역시 하나님 밖에 없구나!” 깨달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사람들이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그 순간에 저자가 어떻게 그걸 봤겠습니까? 아무도 못 봤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나요?
신앙의 고백입니다. 누가 뭐라 하건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나를 택하셨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걸 종이에 알알이 적은 것, 그게 바로 성경책이에요. 이를 신주 모시듯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듯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학에는 기독론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론. 예수가 누구냐 하는 질문의 대답이죠.
그 핵심은 예수가 정말 사람이고 신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하나님이고 참 인간이시라 고백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육체는 탈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가현설이라 하지요.
눈에 보이는 것은 가짜, 진짜는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이를 그리스도론으로 풀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의밉니까?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사람의 말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읽어갈 때 중요한 것은 저자들에게 놓여있던 상황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오늘 본문은 저자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상황 속에서, 인생이 꺼져가는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릴 창조하셨고 인도 하십니다” 하는 신앙고백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나는 뭔가? 왜 이 땅에서 사는가. 궁극적인 인생의 질문에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삶, 사회, 국가의 본질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에요. 권력이 진리가 됩니다. 힘이 진리가 되는 사회라구요.
열이 까만 옷을 입으면 까만색이 진리가 된다는 것.
우리가 생각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고서는 막연하게 그런 진리를 만들어냅니다.
그게 오늘날의 사회라는 거죠.
모든 사람이 하면 진리다 하는 것.
그런 게 현대철학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찾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오늘 창 1:1에서 나오는 말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 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종교생활 하면 큰 일 납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 1:1은 나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내 인생은 없는 것 가운데 ‘바라’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나는 바라 된 인생이다, 즉 나는 유일한 인생이다, 이런 창조성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인생을 꽃 피워 가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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