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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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주일강해설교 4장 1-15절 "예배와 살인"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08-18 13:59
조회
72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본문입니다.
본문에서 읽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3장 22절부터 읽어야 온전히 이해가 됩니다.
거기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아기, 가인을 갖죠.
그러니까 4장이 깔고 있는 배경은 에덴에서 쫓겨난 두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인 겁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축복의 자리에서 떠난 삶들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이야기가 4장 1-15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죄가 등장합니다. 4:7
죄 다음에야 비로소 살인이 등장 합니다.
그런데 죄 이전에는 뭐가 나오는가? 예배입니다.
에덴에서 나온 사람들이 드린 것은 그것이 좋건 싫건 첫 행위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에덴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았지만 죄를 범한 이후에 우리에게 있어 가장 필요하고 먼저 요구되는 것은 예배라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겠습니까?
4장의 포인트가 바로 예배입니다.
크게 두가지인데 하나는 아벨, 하나는 가인이죠.
이를 이분법 적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하나입니다. 가인도 아벨도 예배를 드렸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3절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방식. 가인도 자기 소산으로, 아벨도 자기 소산으로 드렸다는 겁니다.
여기엔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제사를 이해할 때에 아벨이 드린 양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짓기도 하지요.
맞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봅시다.
3장 22절부터는 쫓겨난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들의 삶의 방식은 어땠습니까?
23절, 그의 근원이 된 땅이란 말이 나옵니다. 티끌, 먼지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갈아야 했다. 간다는 말은 섬긴다는 말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와 자기 자신을 섬기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인간본위, 자기중심으로 살았다는 거죠.
4장 4절을 보면 가인이 나오는데 농사하는 자라고 합니다.
3절을 보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는데,
3장 23절이라는 포석을 가지고 4장 2절을 해석하자면, 가인은 자기중심으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자기 중심의 예물을 드렸다는 겁니다.
4, 5절을 보면 아벨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여호와께서 보셨는데, ‘아벨 그리고(바브) 그의 제물’ 이라고 해석됩니다.
아벨을 받으셨기에 제물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봤다는 것은 들여다 보는 겁니다. 아벨의 인격과 신앙을 보시고 인정이 됨으로 예물을 받으셨다는 거죠.
가인은? 가인과 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농사니 양이니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가인이기 때문에 그의 제물을 안 받으신 겁니다. 온전히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았기에. 땅의 소산,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했기에.
내가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제물을 바친 겁니다. 하나님은 그걸 다 아셨다는 것이고요.
가인을 안 받으셨기에 그의 제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양이다 농산물이다가 아니란 말이죠.
돈 100원이냐 1천만원이냐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께 내가 용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두 렙돈이라도 내가 하나님께 드려지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데 아무리 큰 제사를 바친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첫번째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구나 하는 것.
가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예배로 인해 드러나게 되는데 ‘거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 저지르는 것이 바로 살인입니다.
그분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지 않는 것은 살인이라는 겁니다.
예배에서 살인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가인도 받아주고 했으면 아벨하고 더 좋아졌을 텐데 하나님 때문에 가인이 살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도 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할 것은 살인 이후 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어떤 범죄를 했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네 형제 아벨이 어딨느냐 했지요.
이 질문은 우리에게 고민하게 하는 질문입니다.
예배의 연속선상에 있는 문제지요.
우리는 예배 후에 세상에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이 그런 우리에게 너 못된 짓을 했지? 하는 게 아니라, 네 이웃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당신 오늘 기도했어요? 착한 일 했어요? 하는 게 아니라, 네 이웃이 어딨느냐 한다는 것.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네가 어디있느냐.
네 이웃이 아니라 네가 어디있느냐.
타락 전에는 네가 어디있느냐, 타락 후에는 이웃이 어디있느냐 하셨다는 겁니다.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시면서 가장 먼저 처음으로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즉 악이다 하신 것은 바로 독처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성경은 악이라고 봅니다.
독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홀로 사는 것. 그것이 악이라 하신 겁니다.
다 좋았더라 하셨는데 딱 한 번 안 좋다 하신 게 바로 독처입니다.
성경은 어찌보면 인간론입니다.
인간이 어떻냐 하는 문제.
인간의 독처를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그럼 성경은 처음부터 인간을 둘 이상, 공동체라 정의하고 있는 겁니다.
교회, 사회.
이웃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웃과 함께 있을 때 나라는 존재가 명확하게 드러난는 겁니다.
혼자일 때는 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네 이웃, 동생이 어디있느냐 하는 것은 네가 어디있느냐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삶을 살아갈 때에 이웃이 사라지고 나, 우리나라 중심으로 살게 되면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게 살인입니다.
오늘날 한일이 너무 안 좋습니다.
불매, 노 아베 등.
일견에는 맞다고도 여기고, 우리는 국민적 감정 때문에 합당하다고 여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우린 곰곰히 근원적으로 성경에 빗대어 이웃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한국의 이웃은 분명히 중국 러시아 일본입니다.
일본은 아직도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하는, 신의 나라라고 하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에 뒤질새라 우리도 일본을 깔봅니다.
가인이 혼자일 때 저지른 것은 살인입니다.
아벨과 가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일본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세상에 나아갈 때 참된 이웃이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내 이웃에 참된 형제자매가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내가, 우리나라가 주변에 참된 이웃이 있는지.
한일문제 참 어렵지만 아벨과 가인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나라는 다 좋은데 100년, 200년을 바라보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일본은 호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어떻게 참된 이웃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그것을 강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교회도, 국가도.
그렇게 참된 이웃으로 세상을 밝혀가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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