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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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8장 33-40절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10-06 13:52
조회
92


 

 

요한복음 18 38 (33-40) 김산덕 담임목사


“진리란 무엇인가”

 

이제 18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나눈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상기하며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예수가 유대인에게 잡히시고 당시 유대땅을 감독하던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것이 18장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18장을 요약하면 예수죽이기라고 있지요.


유대인들이 그를 포박해 사형에 처해달라는 고발.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세상에서 깨끗하다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이방의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었지요.


그런 이들이 지금 예수를 죽이기 위해 안달이 . 사실이 우리에게 아주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자신들의 교리와 맞지 않다 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마저 경시하는 모습에서, 종교가 일그러질 때의 추악함을 보게 됩니다.


인격보다는 종교적 거룩에 목을 사람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게 됩니다.


그럴때 그들이 가진 위선, 일그러짐은 예수가 가장 싫어하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모습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게 되면 범할 있는 신앙과 신학의 오류고, 종교가 가지고있는 지독한 오류입니다.


우리도 깨어 성령님과 교류하고 새롭게 하시는 힘을 받지 못하면 신앙이 화석화 되어 이런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제 39절을 봅시다.


너희에게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다


너희에게는 대격입니다. 누구누구 에게. 목적격과는 다릅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너희에게 놓아주겠다 해석할 있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너희를 위하여.. 해석도 된다는말입니다. 너희를 위해 놓아줄 수도 있다.


이런 문법적 의미 속에서 보면 빌라도는 성령을 통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없는 사람을 죽이려느냐


전례를 통해 사람을 놓아줄 있는데, 그렇게 하겠느냐? 하는 대목으로 묵상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거부합니다. “아니라.”


이어 정말 안타까운 사실들을 39절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위선자로 살지 말라 하십니다.


깨끗한 하면서 사람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된다. 내가 지금 기회를 줄테니 은혜를 받아라 하시는 겁니다.


이처럼 은혜를 베푸심에도 유대인은 거부합니다. “바나바를 놓아주십시오.”


우리가 읽기 불편해지는 부분이지요.


이방의 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사람을 죽이려는 .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서 거룩을 유지할 있다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악랄하게 범했던 범죄자를 구하고 예수를 죽이려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조차 어기려는 해괴한 종교성을 저자는 우리에게 고발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럼 유대인은 예수를 지독하게 죽이려 했는가?


다른 성경에도 분명 유대인이 예수를 죽이려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본문에 입각해 본다면 진리가 문제였습니다.


이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 것이지요.


바나바를 놓아주는 한이 있어도 그것이 진리라 믿은 .


빌라도도 진리를 몰랐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오늘 읽었던 38 중반을 보면 그는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에게 나갔습니다.


나갔다는 말은 반복해서 나갔다는 의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유대인에게, 예수에게 찾아와 계속해서 물은 겁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 기웃거립니다. 진리를 찾아 헤맵니다.


그래서 진리란 유대인들에게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사수였다면, 빌라도와 같은 정치인, 세상사람들에게는자기 머리, 능력, 상식, 지식으로 찾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 그것이 세상사람들의 모습 입니다.


찾다 하는 동사를 성경에서 보면 재미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철학자들도 사용한 단어인데, 이들이 뭔가 발견했을 , 삼을 캐는 이들이 심봤다! 하듯이, 자기가 골똘히 생각하다 이것이 진리다! 유레카!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진리를 자기 머리 속에서 깨달음을 통해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손으로 획득해내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인격이다. 예수다.”


그래서 발견이 아닌 만나는 것이라고 하고 있지요.


오늘 본문에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묻습니다.


원어를 다시 해석해보면, 3인칭이기 때문에 무엇이냐? 또는 누구냐? 의미도 가능합니다.


요한복음을 계속 공부하면서 진리에 관해서 예수가 크게 말씀하신 부분이 8,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10장에 가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나라고 하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를 만나 자유를 얻는다는 겁니다. 예수가 누구냐가 아니라, 예수를 만남으로 인해 자유를 얻고 그때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찾고 획득하는 아니라 내가 예수를 만날 일어나는 신적인 만남인 겁니다.


만남은 안에 싸움과 음해 등이 들어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남은 어렵고 우리가 어찌할 있는 아닙니다.


어린왕자라는 소설에서는 만남을길들여짐이라 표현합니다.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예수에게 길들여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세상에 것은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거꾸로 하면 내가 예수를 만난다는 자체가 인생의 투쟁거리와 같다는 겁니다.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사상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란 말이죠.


그럴 예수를 만날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검을 주러 왔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설교 가운데 너무 평안만을 간구합니다.


오늘 에스겔 12:38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에스겔 13장에 가면 평강이 없다고 떠드는 이를 죽이시리라 하십니다.
저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보지도 못한 것을 허망한 점궤로 전한다고 하시면서요.


자기 생각을 전한다는 .


계시받았다 해서 허망한 말을 한다는 겁니다. 이를 점궤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들이 평강이 없는데 평강하다, 당신도 성공할 있다, 우리 사회는안전하다 하며 전하고 있다는겁니다.


그런 설교가 사실 달콤한 시럽처럼 우리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에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것 없이는 그대로 시럽만 먹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과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은혜에 참여합니다.


세례는 내가 예수님과 만나는 것이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만날 , 안에는 엄청난 싸움,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님께 길들여져가는 삶을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신을 예수께 맞춰서,


복음에 길들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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