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서재

고백하는 서재

주일구약강해설교 사무엘상 1장 1-8절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19-11-17 13:25
조회
50


주일구약강해설교 사무엘상 1장 1-8절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오늘 본문을 잘 듣기 위해서는 사무엘 상이라는 책이 놓인 상황을 조금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삼상 1장의 상황은 사사기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습니다. 사사기 21:25, 즉 맨 마지막 말씀을 보면 그때에 왕이 없는고로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사사기 저자는, 그리고 성경은 그것을 죄로 본 거죠.
악이 판 치고 관용되는 시대. 그런 와중에 삼상 1:1이 등장하는 겁니다.
삼상은 왕정시대로 돌입하는 길목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 왕을 세워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사기에서 맨 마지막에는 ‘왕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소견대로 행했다’고 하는데, 이 표현은 삼상 8절에서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할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들이 나를 왕으로 삼으려 하지 않아 인간의 왕을 세우려 한다’고.
즉 사사기서의 시대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구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사기는 영적으로 자유 방임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 욕심대로만 살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 한 시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삼상 1:1-8의 말씀을 보면, 그런 와중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자 했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엘가나 입니다.
그 사람을 삼상 1:3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인생의 왕으로 삼지 않으려 했던 시대에, 그나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뜻대로 살려 했던 사람이 엘가나라는 겁니다.
이때 실로로 올라간다는 말은 중요합니다. 사사기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나와 성막예배를 드립니다. 그 위치가 실로죠.
그럼에도 실로라는 단어는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잘 안 드렸다는 겁니다. 제사를.
그런데 엘가나가 매년 올라갔더라 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이스라엘은 1년에 세 번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이 삼대절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매년 자기 고향을 떠나 실로까지 갔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라마 사람입니다. 실로까지는 약 35킬로 거리라고 합니다. 가족을 다 데려가면 이틀 꼬박 걸리는 거리. 삼대 절기도 아닌 이 날에조차 그는 예배드리러 갔다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는 이런 사람, 이런 가정을 통해 열린다고 성경은 말하는 겁니다.
오늘 우리 세대도 그렇습니다. 좌와 우는 서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를 뒤바꿀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원하고 자발적으로 나와 기도하는 가정, 이런 가정을 주님은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엘가나 처럼요.
그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절엔 그의 족보가 나오는데, 성경에 족보가 나온다는 건 아주 중요한 겁니다. 정당성을 말하는 거거든요. 예수의 족보가 그렇습니다. 예수가 메시아로서 정당하다! 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치에요.
그런데 엘가나의 족보에는 아무런 훌륭한 인물이 없습니다. 대단찮은 집안이라는 거죠.
그냥 평범한 사람. 그러나 엘가나는 매년 주님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두번째로 생각해볼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실 때 엘가나를 사용하시지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시선을 주목하게 합니다. 그의 두 아내, 그 중 자식이 없던 한나입니다.
브닌나는 열매가 많이 맺힌 가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뜻은 은혜입니다.
브닌나는 자기의 열심으로 많은 결실을 맺은 사람을, 한나는 은혜로만 사는 사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의 이름이 은혜라는 것,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어떻게요?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 실로에 올라가 제사를 드렸는데... 엘가나가 제사드리는 날에는...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합니다.
자식을 가지지 못한 여인인 한나. 그런데도 엘가나는 한나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었더라 하는 겁니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그 제사음식을 서로 나누어먹었습니다. 가족의 연합과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모임입니다.
그랬는데 엘가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다 각 분깃대로 나누어주었지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절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원래는 코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고개를 들다 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한나에게 얼굴을 주니.. 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굴을 인간의 한 몫으로 해석하는 성경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배를, 갑절로 준다고 하니까 이건 얼굴을 마주한다..는 뜻이 있어서 한나는 특별히 엘가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했다고 해석하는 주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경에는 갑절로 주었다고 하는 설명은 좋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거죠.
이 말에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5절,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지 못하니..
6절,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격분하게 하여...
엘가나가 한나를 특별하게 사랑합니다. 그에 대해 브닌나가 격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경 저자는 한나의 태를 하나님이 닫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과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했다는 대목을 대립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한나를 철저히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브닌나가 한나를 질투한 이유는 뭡니까? 장자권 역시 자기 자식들에게 다 있었는데 뭐가 부럽다고요? 재산도 다 자기 자식들에게 돌아갈 터였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한 이유, 괴롭힌 이유는 뭘까요? 브닌나가 뭔가를 깨닫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갑절을 주다..는 단어는 출애굽기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의 장자권을 형성할 때 장자에게는 갑절을 주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브닌나는 엘가나가 한나를 특별히 대하는 중에 그 안에서 한나에게 일어날 어떤 일을 감지한 겁니다. 분명 다 가진 사람은 자기인데도 뭔가가 의심스럽고, 석연치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브닌나는 단순히 미워한 게 아니라,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죽여야 할 적으로 여겼다는 겁니다(6절).
여기서 한나의 인생을 보면 운명이 이 여인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꼼꼼하게 읽으면,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 라고 합니다.
엘가나가 여호와께 올라가지만, 어떻게 보면 한나가 엘가나를 재촉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자식도 없는 한나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한나는 올라갔습니다.
그런 한나를 하나님이 유심히 보셨으리라는 것이 상상되는 대목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몰라주고, 시기하고, 멀리하고, 힘들게 할지라도, 하나님만큼은 나를 사랑하실거야, 내 편이실거야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그런 하나님께조차 버림받았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성경 표현이 한나는 불임이었다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아기를 가질 일말의 여지가 있었겠으나, 하나님이 태를 닫으셨다는 말을 합니다. 철저히 절망스런 상황,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황에 뭐하러 예배를 드립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10절).
8절에서 엘가나는 한나를 위로합니다. 어찌하여 슬프냐, 어찌하여, 어찌하여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이 누군가를 꾸짖을 때 하는 표현입니다.
왜 질질 짜냐? 하는 걸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냐? 하며 자기중심적인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엘가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잘 몰랐던 겁니다.
차라리 당신이 나에게 열 아들보다 귀하다 위로했으면 더 좋았겠지요.
즉 남편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은 여인.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자원해 매년 올라갔던 여인. 한나의 상당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모든 일에 한나처럼 나와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럴 때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면 좋겠다, 이웃과 교회에 새로운 일이 시작되면 좋겠다 할 때,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태를 닫으셨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조차 붙잡고 기도하면, 그 상황을 바꿔 새 일을 하시는 주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님을 의지하여, 그분으로 인해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주님의 백성 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전체 21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1
New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28-30절 “다 이루었다”
confessing | 2019.12.08 |
confessing 2019.12.08
20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23-27절 “자기 집에 모시니라”
confessing | 2019.12.01 |
confessing 2019.12.01
19
주일구약강해설교 사무엘상 1장 1-8절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confessing | 2019.11.17 |
confessing 2019.11.17
18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17-22절
confessing | 2019.11.10 |
confessing 2019.11.10
17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8-16절
confessing | 2019.11.03 |
confessing 2019.11.03
16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9장 1-16절(설립7주년)
confessing | 2019.10.27 |
confessing 2019.10.27
15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9장 1-6절
confessing | 2019.10.13 |
confessing 2019.10.13
14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8장 33-40절
confessing | 2019.10.06 |
confessing 2019.10.06
13
요한복음주일강해설교 18장 28-32절
confessing | 2019.09.15 |
confessing 2019.09.15
12
요한복음 주일강해설교 18장19-27절
confessing | 2019.09.14 |
confessing 2019.09.14
Call Now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