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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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2절 '태초에' (200701)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7-09 16:35
조회
24

태초에

창010102                                                                                                                                                                                                                                                이상필 목사


오늘부터 우리는 창세기를 공부하게 됩니다. 창세기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구원의 계획 등을 함께 배워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창세기는 어떤 책일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세기를 우주의 기원, 지구의 기원, 생명의 기원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창조와 기원에 관한 책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제목도 창세기(세상을 창조한 기록), Genesis(기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다일까요? 우리는 창세기가 정확히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서는 누구에 의해서 언제 쓰였는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창세기는 BC 1500년경 모세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배웠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속에서 발견되는 여러 정황상 이후에 첨부되었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 기록된 것일까요? 가장 유력한 것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로 돌아온 학자들에 의해 편집 및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뒤늦게 창세기를 기록했을까요? 그들에게는 아직 역사를 기록한 책이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자료들을 수집, 편집,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역사책일까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창조와 기원에 관한 책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는 하나님에 관한 책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창세기의 시작은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섬기는 신은 어떤 분인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민족이 시작되었지만 곧 그들은 애굽의 노예로 430년간을 생활하였고, 모세를 통해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정착을 했지만 결국 민족의 분열이 일어났고,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멸망 당하였으며, 남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들의 실체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정체성을 바로 세울 필요성이 있었고,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와 기원도 기록하고 있고, 역사도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창조하시고 기원케 하신 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 달리 말하면 창조자이자, 통치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창1, 2장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인가?, 3-11장은 범죄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누구인가?, 12-50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한 히브리 민족에게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그간 신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었던 해, 달, 별 등 천체에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지상의 힘있는 모든 것을 단순히 피조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둘째는, 피조물 중 인간을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고, 그 호흡을 불어 넣어 동일한 인격적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신화 등에서 신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지배하고 다스리기 위한 목적이었으나나 창세기에서는 서로 교제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확인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교제한다는 것은 여러 방법으로 여러분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싶어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책 창세기를 통해 우리도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 원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천지창조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것은 이후에 있을 창조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은 창조의 모든 과정을 한마디로 선언한 총론이라면, 3절부터 31절까지는 각각의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각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בְּרֵאשִׁ֖ית 베레시트)는 시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공간적, 물질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시간, 공간, 물질 등이 시작되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 만물의 기원 즉, 시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시작에서 종말로 직선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역사관입니다. 둘째는 성경에서 말하는 태초가 실제로 태초가 되도록 하신 분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본다면, 이것은 태초 즉, 시작을 만드신 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개연성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고, 만물이 윤회한다는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연성 없이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고, 그 분의 주관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만물의 기원을 만드신 그 분은 누구입니까? 본문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번역된 엘로힘(אֱלהִים)은 복수형입니다. 여럿이지만 하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표현된 하나님은 모두 복수형 엘로힘입니다. 그 분은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신 분이며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전능하시고,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신 분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는 천지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원문에서는 “하늘들과 땅’으로 하늘을 복수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과 보이지 않는 하늘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 우주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땅을 중심으로 한 어느 정도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 못하든 존재하는 모든 공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영적인 실체, 천국과 지옥 등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들을 만드셨고, 운영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창조하시니라 (בָּרָא 바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나타내는 단어가 세 가지 있는데, 그 중 바라는 하나님께만 독점적으로 사용되어 구별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경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라가 사용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21절과 같이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창조하신 경우, 그리고, 27절 영적인 존재인 사람을 처음으로 창조하신 경우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바라’라는 동사를 하나님께만 독점적으로 사용함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등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창조의 시작 단계로, 땅은 아직 텅 빈 상태이며, 무엇인가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 상태에 대해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두 문장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본문을 보다 원문에 충실히 번역하면 ‘흑암이 깊음의 면(פָנִים 프네)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가 됩니다. 이와 같이 두 문장은 동일한 구조를 갖지만 내용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것은 빛이 없는 상태, 완전한 어두움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 어두움이 심연 깊은 곳에도, 깊음 위에도 있는 상태입니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 가장 깊은 어둠으로 조금의 기대나 희망을 찾아 볼 수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רוּחַ 루아흐, 호흡, 영)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합니다. 운행했다(רָחַף rachaph)는 동사의 뜻은 ‘맴돌다’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알을 품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했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할 때는 어둡고 드넓은 수면이 펼쳐지고 그 위를 날 듯 지나가는 성령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렇게 상상해볼 수 도 있지 않을까요? 수면을 포함하는 거대한 덩어리를 품고 있는 성령입니다. 새끼가 태어날 것을 꿈꾸며 알을 품는 어미 새처럼, 만들어질 세상을 기대하며 품고 있는 성령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흑암은 기대나 희망을 찾아 볼 수 없다면, 하나님의 영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에 의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나 공간이 의미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속에 하나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시간 속에서,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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