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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4-17절 '동산을 창설하시고' (200729)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9-19 10:41
조회
71

동산을 창설하시고

 

창020417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째 날 즉, 안식일에 대해 함께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고,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상의 내용까지가 일곱째 날까지의 천지 창조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방법과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는 ‘하늘과 땅의 내력’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력이라는 말의 원문은 톨레도트(תּוֹלְדָה)이며 그 뜻은 계보, 세대, 출생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얄라드(יָלַד)라는 단어로부터 유래했는데, 이 ‘얄라드’라는 단어는 ‘아이를 낳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과 땅이 ‘누군가에 의해 생산되거나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기록될 당시에,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자연 만물을 모두 다 신과 같이 여기고, 그것들을 향해 제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이방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그것들이 단순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 누구인가를 4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누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1장부터 2장 3절까지를 통해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엘로힘’이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2장 4절에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엘로힘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주권적 창조주로 표현한 반면, 여호와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속의 언약을 주도적으로 세우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 두 가지의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우주의 창조주가 언약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표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는 내용을 7절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장에서의 내용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첼렘과 데무트를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장 7절에서는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합니다. 우선 사람을 만든 재료가 소개되었습니다. 우리 말에서는 ‘땅의 흙’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원문의 내용을 보면 ‘땅의 티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다마의 아파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결코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훅 불면 날아갈 티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자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즉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역으로 하자면,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생기가 빠져나간다면 그는 또 다시 땅의 티끌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불어 넣어주신 생기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를 에덴의 동산에 두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그를 ~에 데리고 가다’ 또는 ‘그곳으로 인도하다’ 또는 ‘그곳에 있게 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두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우리는 ‘두다(שׂוּם 숨 또는 심)’라는 원문 동사의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문의 동사가 ‘두다’라는 의미도 있으나, ‘임명하다’ 또는 ‘약속하다’ 등의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을 동산에 두시고 그를 동산지기로 임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15절에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명이라는 것은 주인과의 약속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어있지는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과 약속을 맺으시는 것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자의 삶의 자리에 두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우리의 삶의 자리의 동산지기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동산지기로 임명하신 하나님께서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는데, 그 동산 가운데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두 나무가 동산 가운데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그 위치를 ‘동산 가운데’라고 말합니다. 가운데라는 원문 타베크(תָּוֶךְ)는 말 그대로 ‘가운데, 중앙에’라는 의미도 있지만, ‘안쪽에, 내면에’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두 나무를 동산의 중앙에, 가장 안쪽의 내면에 숨기듯이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무들이 매우 중요한 나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동산에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동산에 있는 다른 나무의 열매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첨가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나무에 대해서는 생명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특별한 명칭이 붙어있고, 각각 그에 따른 기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16-17절을 통해서 나무들에 대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16절에 의하면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 것이며,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과 직접적으로 하신 언약이었으며, 그 언약을 어길 시에 일어날 일 즉, 죽음에 이르게 될 것까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원문에서는 죽는다는 무트(מוּת)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 죽으리라’ 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동산 가운데 있는 두 나무 중 하나는 먹는 것이 허락되었고, 다른 하나는 먹는 것이 금지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이 선과 악을 아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굳이 그것을 금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굳이 죽고 죽으리라고 할 만큼 금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동산의 나무 열매를 임의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생명나무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모든 나무들은 그의 삶에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달랐습니다. 첫 사람이 창조되었을 그 당시 사람에게는 선악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선악이라는 개념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악을 안다는 것은 금기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같은 것이었음을 3장 5절 말씀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굳이 내면 깊이 두신 선악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서 가지려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돌이켜 보면 창세기 2장 17절의 말씀은 복선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면 깊이 숨겨놓으신 것을 굳이 파헤쳐서 자신의 내면 깊이 두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첫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면 깊이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 교만한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라고 하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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