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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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18-25절 '돕는 배필' (200916)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9-19 10:46
조회
66

돕는 배필

 

창021825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신 내용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사람은 땅의 흙 즉,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존재로 하나님의 생령이 없다면 실제로 티끌로 돌아가버린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타베크 תָּוֶךְ)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셨고, 특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 것을 명하신 내용까지 함께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혼자 있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드시는 내용을 함께 공부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혼자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 중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남녀 관계에서 혼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담은 함께할 여자가 없이 혼자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을 보니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셨습니까?

18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십니다. ‘돕는 배필’은 원문에서 ‘(에제르)עֵזֶר’ 입니다. 이 말은 ‘돕다’라는 동사 아자르(עָזַר)에서 파생된 말로 ‘돕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 그 아담을 위해서 하나님께 돕는 자를 만드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담에게 돕는 자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충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은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만드시는 내용 중간에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었습니다. 19-20절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가시고, 그가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의 생물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 부르셨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굳이 아담에게 이끌어 가시고 아담이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담이 생물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그것이 곳 그 생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실 세상 모든 만물들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고, 우리도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이 내용이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는 히브리적 개념을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히브리적 개념 속에는 불리우는 그것, 즉 이름이 그것의 본질이자 속성이 됩니다. 사람의 경우, 사람이 갖는 본질적인 것들, 인격적인 것들, 생물학적인 것들 등 모든 것이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바로 사람이 된 것처럼, 생물들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대로 그 이름이 곧 그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역을 그에게 맡기셨고, 그가 부르는 대로 그렇게 인정해주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의 각기 그대로의 속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도록 하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돕는 배필의 이름을 직접 부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만드실 때는 아담을 만드실 때와 달랐습니다. 아담은 땅의 티끌로 만드셨지만, 돕는 배필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드신 여자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을 때, 그녀를 본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합니다. 바로 자신에게서 나온, 자기와 같은 본질을 가진 사람으로, 참 귀하고 귀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부르리라’합니다. 아담이 그녀를 ‘여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즉, 그녀의 본질적 속성이 확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질적 속성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입니까? 바로 아담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2, 23절에서 여자 이는 남자를 의미하는 ‘이쉬’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이샤 (אִשָּׁה) 라는 단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여자라는 단어는 이미 창1:27에 ‘네케바(נְקֵבָה)’라는 단어로 표현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젠더의 개념을 담은 말로 남성(자카르 זָכָר)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남자와 여자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서의 개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표현을 아담의 입으로 직접 부르게 함으로써 차별이 없으며 동등한 존재로서 귀하게 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차별을 만들고 남녀가 서로 대적하게 만드는 일들이 온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 일들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이 마음을 바로 알고,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때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난 두 남녀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는 어느 때일까요?

오늘 본문 24절에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본문에서 ‘떠나’라는 이 단어는 ‘주어진 모든 것들을 내버려 두고 떠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합하여’는 그 본래 의미가 ‘꼭 달라붙다’ 또는 ‘밀착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 몸을 이루다’는 말 그대로 ‘하나의 몸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이전까지는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자신들의 배경이 되었던 것들을 끊어내고 서로가 깊이 끌려, 하나의 개체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서로가 보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원초적인 그 상태를 서로가 받아들이고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대의 외형만이 아니라 그 모든 인격과 내면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그 본질적인 모든 것도 하나가 된다는 것으로, 그 상태가 되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답게 연합되는 남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격이나 내면 등은 중요히 여기지도 않고 오직 육체만을 탐닉하고자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에 대해 존중히 여기는 생각들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세대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그 책임을 다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돕는 자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고, 또한 여러분들이 돕는 자로서 귀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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