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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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7절 '나무를 본즉' (201007)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0-11 17:26
조회
49

나무를 본즉

창030107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돕는 배필 ‘에제르’를 만들어주신 내용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돕는 배필의 이름을 짓게 하셨고, 아담은 그녀를 보고 남자, ‘이쉬’로부터 취하였기에 여자, ‘이샤’라 부르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녀를 이렇게 칭하도록 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존재이며 서로를 존중해야 할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지음 받아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지내던 이 두 사람에게 위기가 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본문에서 등장하는 뱀은 그냥 들짐승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들짐승들과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뱀을 처음부터 사탄으로 간주해버립니다. 그러나 본문 1절의 내용으로만 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뱀의 속성에 대해 ‘가장 간교하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간교하다는 말의 원문은 아룸(עָרוּם)입니다. 그 본래의 뜻은 간교하다, 교활하다 등의 뜻도 있지만 주로, ‘신중하다’ 또는 ‘분별력 있다’ 등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기자가 본문 1절에서 이렇게 뱀의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1절 하반절의 뱀의 질문을 통해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절 하반절에 뱀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의 의미가 우리말로는 조금 약하게 번역되었습니다. 본문의 의미대로 하자면,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셨어?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의도적 문제제기, 둘째는 본질을 흐리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그냥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 아니라 답을 어떻게든 끌어내기 위한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으로 본질을 흐려서, 있지 않은 사실을 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창세기 뱀의 속성을 표현한 이유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다’는 것이 무엇에 근거를 두며,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다해도, 그것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죽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뱀이 그렇습니다.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으나, 그것이 문제제기를 하고 본질을 흐리는데 사용됨으로 결국에는 그들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신중하다고 하고 분별력이 있다고 해도,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곧 뱀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가진 속성을 주님 안에 근거를 두고, 주님을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본문에서 이 질문을 들은 여자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3절 말씀을 보면 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이 말은 2장 17절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죽고 죽으리라)는 말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대답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자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이미 들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대답이 달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똑 같은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물론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릇 해석되면, 잘못 해석한 자신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이들도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갖는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잘못 해석된 말을 할 때, 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신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너희로 하여금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의 반응이 눈에 띱니다. 6절에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나무인지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본문의 번역이 우리말에서는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기도한 정도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의 내용을 보면 그 나무를 보자마자 연쇄적으로 반응이 나타나는데, 음식으로 좋아보였고, 더 보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났고, 지혜롭게 할 것 같아 탐이 났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그 나무를 보는 것’으로 이미 그 열매가 그녀의 손에 잡혀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갈등을 할 새도 없이 이미 그녀의 손에 잡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본문에서 남편이라고 해석되었지만 원문은 남자(이쉬)입니다. 여자 이시가 준 것을 남자 이쉬가 역시 그것을 조금의 거절도 없이 받아 먹어버립니다. 그 나무는 그들이 평소에도 지나다니며 보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나무가 이제는 그들의 모든 감각을 끌어당기는 것이 된 것입니다. 나무가 변했습니까? 아니요. 그들의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바뀌니 ‘그 나무를 본즉’ 연쇄적인 참을 수 없는 반응이 생겨났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안에 바로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언제든 동일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지키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는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늘 성령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열매를 먹은 결과 그들의 눈이 밝아져 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았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본문에서 눈이 밝아졌다고 하는데, 원문에서는 그냥 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지 않아도 되었던 것, 그래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에 보이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벗은 줄을 알고’라 합니다. 그간 벗은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벗은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아 가리게 됩니다. 그간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두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이에 가려야 할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던 관계였는데, 이제는 그 가려야 할 정도로 신뢰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변화가 그들 사이에 파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치부에 대해서는 눈이 쉽게 밝아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신뢰관계가 깨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사람의 치부에 대하여는 어둡게 하고,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밝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신뢰가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 부산고백교회의 교역자들, 그리고 성도들은 세상에 대해, 사람의 치부에 대해 눈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삼위 하나님께, 그리고, 그 말씀에 눈이 밝아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창2:18-25의 내용을 통해 남자 이쉬로부터 여자 이샤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을 통해, 그 둘이 동등한 존재이며,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창1:26-31절을 공부하면서 아담이 처음 창조된 남자의 이름 이외에, 그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담이라고 하였고, 그 아담의 범주에는 여자도 포함된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들을 바탕으로 오늘 본문의 사건을 재조명해보면 타락의 시발점이 된 오늘의 사건에 대해서 굳이 누가 먼저 유혹에 빠졌는지를 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아담의 변명처럼 굳이 순서를 나누려고 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적으로 사람의 범죄를 말할 때 ‘첫 사람 아담’이라고 합니다. 즉 그녀가 곧 그이고, 그가 곧 나,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창세기의 이 범죄의 사건은 곧 전 인류의 범죄 사건이며, 이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내용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쉽게 범죄할 수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은혜를 다시금 깊이 묵상하며,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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