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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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1-7절 '죄를 다스릴지니라' (201125)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2-15 11:08
조회
115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040107                                                                                                                                                                                                                                       이상필 목사

오늘 본문은 에덴 동산 밖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았습니다. 이는 인류의 첫 출산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하와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담과 동침하여 득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로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본문에서 말미암아로 번역된 에트(אֵת)는 함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내용을 원문으로 보면 ‘여호와와 함께’로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징벌과 같이 ‘임신하는 고통과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창2:16절의 내용이 실제화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언약이 실제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원문의 에트(אֵת)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것은 ‘~에 반하여’, ‘~에 대항하여’입니다. 이대로 해석을 해보면 ‘내가 여호와에 반하여 득남하였다’입니다. 그녀가 득남한 것이 여호와께 반하고, 대항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아이의 앞날을 미리 암시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암시가 실제가 되는 일이 이후의 내용에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중의적 내용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사고의 폭을 넓게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말씀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친 해석을 하고 하나님을 그렇게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을 다각도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와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 ‘득남’은 ‘아들을 얻었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을 읽을 때 당연히 ‘아들을 얻었다’로 이해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원문을 읽어보면 ‘이시(אִישׁ) 즉, 남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남자와 여자의 생성과정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셨고, 그 남자의 갈비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한 몸으로, 동등한 존재였습니다. 지배나 피지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여자(이샤)로부터 남자(이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여자로부터 나온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변칙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칙적인 구조는 오늘날 어느 곳에서든 발견이 됩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리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삶에 편승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회복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소망 없어 보이는 세상 가운데서도 소망을 발견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은 후 아벨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2절 하반절에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고 합니다. 혹시 이 문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신 분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이름이 쓰인 순서는 중요한 의미를 담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장자의 이름이 먼저 쓰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역시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계속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3-5절 상반절까지는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렸지만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내용을 전합니다.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3절에 보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드렸고, 4절을 보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는 가인 그 소산으로, 양을 치는 아벨은 그 소산으로 드렸는데, 그 중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제물에 있어서는 그것이 ‘처음 것’인지 여부입니다. 아벨은 제물에 대해서는 ‘양의 첫 새끼’라고 해서 그것이 처음 난 것임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가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처음 것’인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처음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처음 것’은 대표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처음 것’하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으뜸으로, ‘처음 것’을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드린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렇게 제물을 드렸을 때,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제물을 드리는 자와 제물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제물을 드린 것은 단지 물건을 드린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드린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면에서 아벨은 용납되었으며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통해 우리의 예배와 헌금 생활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온전히 나를 드리는 예배인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처음 것’처럼 구별된 헌금인지 돌아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용납하실 만큼 온전히 나를 구별하여 드리는 우리의 예배와 헌금 생활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가인의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의 모습을 5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기서 ‘분하다’의 원문의 뜻은 격분하여 불타오르 듯 화가 난 모양을 말합니다. 또한 안색이 변하였다는 것은 그 얼굴을 떨구었다는 의미로 그 분을 삭이지 못하여 얼굴을 들지 않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럼 가인이 왜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6절 말씀에 이어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이 말씀을 바탕으로 재해석해보면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낯을 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는 선은 무엇일까요? 이는 3장에서 말하는 선악의 선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야타브(יָטַב)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좋게 하다’ ‘잘하다’, ‘누구로 하여금 용납되게 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 용납되도록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아신 하나님은 그와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고, 그에 대하여 그는 불같이 분노하며 낯을 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예배의 중요성을 단순히 교역자의 잔소리 정도로 들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의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을 풀어 대언하는 것이기에 잘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이 드리는 예배가 용납될 수 있도록 잘 해야만 합니다. 예배에 목숨을 걸 정도로 잘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고 하시면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엎드려 있다’의 원문의 의미는 쭉 뻗고 누워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쉬도록 인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쉬도록 인도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죄에 머물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출입구에 죄가 엎드려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또는 집으로 들어올 때 마치 발판을 밟듯이 죄를 밟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죄에 점점 동화되어 죄에 머무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죄 가운데 머물게 하려는 죄의 속성에 동화되지 말고 그 죄를 다스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죄는 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그 죄에 머물도록 인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죄가 문에 엎드리지 못하도록 선을 행하며, 또한 죄에 동화되지 않도록 죄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죄를 다스리는 것은 주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주님과 동행함으로 죄를 능히 이기고 다스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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