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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8-15절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201209)

창세기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2-15 11:11
조회
98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040815                                                                                                                                                                                                                                    이상필 목사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자를 달리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공부하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중요히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지 않도록 우리가 죄를 멀리하는 생활을 해야 함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늘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예배 생활을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벨에게 말하고’라고 했는데, 본문 각주에 의하면 고대 역본에 ‘우리가 들로 나가자’라고 말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또한 우리말 본문에서는 그 상황을 잘 설명하지 않았는데 원문에 의하면 가인이 아벨을 대하여 일어나서 그를 죽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이미 있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왜 아벨을 죽였을까요?

그 이유를 본문에서는 명확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아벨과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술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본문이 3-7절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 중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그 일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분노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는 질문을 통해 그가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들을 통해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심히 분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자신의 동생 아벨에게로 표출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내적 분노가 아벨을 죽이는 외적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그에게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한 제안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임으로 그 제안을 거절한 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제안을 하십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잘 알고 하나님과 관계를 돈독히 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더욱 삐뚤어진 행태를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더욱 친밀하기 원하신 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여호와가 가인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하나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는냐’ 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입니다. 이는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가인이 무엇을 했는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계시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첫번째 질문을 보면 하나님이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지 않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너의 아우’라는 소유격을 사용해서 물어봅니다. 이는 가인과 아벨이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라 혈연으로 묶인 특별한 관계임을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한 관계를 각인시키시는 이유는 자신의 범죄함을 속히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한다’는 대답과 함께 그 특별한 관계를 애써 부정하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두번째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는 특별한 관계를 끊어낸 그 행위의 저변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즉 자신의 동생을 죽인 자기 자신을 직면하도록 하는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실까요? 적어도 우리는 가인처럼 동생을 죽이거나 사람을 죽인 자들은 아니니 이런 질문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봅시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 된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성도들이 어떤 일로 인해 교회를 떠났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네 형제 아무개가, 네 자매 아무개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그들의 떠난 이유를 애써 외면하려고 할 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까요? 사실 어찌 보면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와 같은 질문에 ‘내가 그들을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항변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주님 앞으로 인도하며, 그들이 믿음 안에 살 수 있도록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와 같은 가인의 살인이 불러 일으킨 결과를 11-12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11절은 땅을 의인화 해서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말은 ‘땅에서 저주를’이라고 쓰고 있는데, 그 원문의 뜻대로 보면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입니다. 그렇다면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저주에 관한 내용을 본 바가 있습니다. 창세가 3장 14절의 뱀이 얻게 된 저주와 17절의 땅이 얻게 된 저주입니다. 그 중에 17절은 땅이 저주를 받게 된 이유를 아담의 범죄함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가인이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즉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땅이 이제는 그 아담의 후손인 가인에게 저주를 전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저주가 흐르도록 하는 동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즉, 죄가 있는 곳에 저주가 있는, 즉 죄의 대가로 저주가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주어진 저주를 말씀하시는데 ‘네가 밭을 갈아도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이며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경우 밭을 가는 수고를 하면 비록 가시덤부로가 엉겅퀴가 있을 지라도 밭의 채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에게는 그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땅에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저주를 부릅니다. 어떤 형태의 저주이든 죄가 있는 곳에는 저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저주가 가득한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 역시 저주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끝나 버린다면 참으로 안타깝겠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피할 길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비록 저주 가운데 살아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저주 가운데서 구원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저주를 얻게 될 것을 말씀하자 가인은 그 벌이 너무 무겁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 이 유리하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을 것이며,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 하시며 그에게 표를 주어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살인을 행한 자이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살인을 당하는 저주를 맞게 된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표까지 주시며 그를 보호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요?

혹자는 비록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 표를 주어 살리신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은혜의 측면으로만 해석하고 말 일일까요? 가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을 만나는 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그가 낯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그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징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표를 주셨다는 것을 은혜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죄에 상응하는 징벌로도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반드시 맞이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영원한 죽음을 피할 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표를 볼 때마다 우리를 향하신 징벌과 용서,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죽임을 면하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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