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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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12-13절 강해설교 03 "새로운 시대"

마가복음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09-29 10:33
조회
94

새로운 시대

막011213                                                                                                                                                                                                    200927 주일설교 /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으시는 내용을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구원의 사역이 시작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12-13절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나가신 내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성령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지만, 원문에서는 ‘그리고 곧(Καὶ εὐθὺς)’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 ‘곧, εὐθὺς’라고 하는 이 단어를 우리는 마가복음을 읽는 동안 종종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 말로는 ‘곧’ 또는 ‘즉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4복음서에서 41회 사용되는데, 그 중에 마가복음에서만 35회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를 이렇게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마가복음 저자가 무엇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가복음 저자는 ‘곧’ 또는 ‘즉시’라는 이 단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 단어는 마가복음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즉시’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처럼, 저자가 이 단어를 통해서 즉시로 전하고자 했던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자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 복음을 즉시 소개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던 것입니다. 1-13절의 내용을 봐서 알겠지만 그는 앞의 내용들을 모두 간단하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들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복음을 즉시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이라는 말로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과 그 분의 가르치시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즉시성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복음을 지체함이 없이 즉시로 전해야 하겠다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복음을 즉시로 드러내어 표현하고, 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복음을 만난 사람에게는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εὐθὺς 즉시로 역사하시는 복음을 εὐθὺς 즉시로 표현하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저자가 이 ‘곧, εὐθὺς’’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마가복음을 꼼꼼히, 깊이 있게 읽어보시면 그 이유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면서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일성 있게 한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그렇다면, 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그 포인트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도달하셔야 할 목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확실히 하자면, 십자가는 ‘곧’ 또는 ‘즉시’를 요구하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저자는 εὐθὺς ‘곧’ 또는 ‘즉시’라는 표현을 쓰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이 고난의 종으로서 즉시로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즉시성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지 못한 분 계십니까?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을 위해서 즉시로 순종하심으로 십자가로 나아가셨고,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러분들도 εὐθὺς 즉시로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어서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성령에 이끌리어갔다(ἀνάγω)’라고 합니다. 이끌리어갔다의 원문의 뜻은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앞서 예수님을 광야로 안내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마가복음 저자는 전혀 다른 느낌의 표현인 ‘몰아냈다’를 사용합니다. ‘몰아냈다’는 원문은 ἐκβάλλω인데, 밖으로라는 ἐκ와 던지다라는 βάλλω의 합성어로 ‘밖으로 던지다’입니다. 성령이 예수를 밖으로 던지듯이 광야로 밀어낸 것입니다. 이 표현은 매우 거친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마가복음 저자는 이렇게까지 거친 표현을 사용하면서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셨다고 합니다. 이 표현을 사용해야 할 만큼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신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매우 궁금해집니다. 왜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던지듯이 몰아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13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상반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궁금해집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하셔야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의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계셨다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계셨을까요?

우리는 이 답을 찾기 위해서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사용된 예를 찾아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큰 변곡점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40이라는 숫자가 쓰인 곳이 많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40년, 40일 등 40과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중에 어떤 내용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 광야 40년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애굽의 노예로 있던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결정적인 변곡점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애굽의 노예 시대를 살았다면, 광야 40년의 시작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의 시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의 40일도 새로운 시대를 여시는 변곡점 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새로운 시대를 여신 것일까요? 마가복음 도입부에서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예언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여시는 새로운 시대는 ‘복음이 백성들과 함께 있는 시대, 즉 복음의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광야 40일은, 이 새로운 시대, 구약에서 신약으로, 어둠의 시대에서 빛의 시대로,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를 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복음의 시대를 열어가시는 예수님께 사탄이 도전을 해옵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시험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시험이 있었던 중요한 한 사건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을 향한 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속이는 시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한 사람이 아닌 전인류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시험에서 첫 사람 아담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모든 사람에게 죄와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의 노예로 전락해버리는 노예 시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사탄이 이제 복음의 시대를 여시는 예수님을 향해 시험을 합니다. 그 시험 역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하는 유혹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담과는 달리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십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첫 사람 아담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하여 전 인류가 노예가 된 것에 반하여,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이기심으로 노예로 전락 한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노예 시대로부터 복음의 시대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은 예수를 광야로 내던졌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며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시험을 이긴 복음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렇게 열린 복음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열린 복음의 시대이지만 여전히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는 경우도 우리는 수없이 봐왔습니다. 어떤 차이입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즉 복음의 능력을 얻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 능력, 우리 안에서 살아, εὐθὺς 즉시로 역사하는 그 복음의 능력을 우리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계속해서 사탄의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복음의 능력으로 승리한 시험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산고백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시대에 모든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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