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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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7절 강해설교 02 "복음적 자기인식" - 종(둘로스) vs 종(에베드)

로마서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0-04 16:14
조회
92

로마서 1장 1-7절 강해설교(2)

복음적 자기인식
종(둘로스) vs 종(에베드)

김산덕 목사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 만남에 비추어 해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라는 복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복음 앞에서,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 세 개의 서신서를 써내려가면서, 작다/적다/하찮다는 뜻을 가진 ‘파우로스’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한 신앙고백적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그는 자신을 늘 그렇게 인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서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두 번째로 쎴던 단어는 “종”이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열 세개의 서신서는 일반적으로, “파우로스, 사도로 부름을 받은” 어순으로 등장하자면, 유독 로마서와 디도서는 그 사이에 “종”(둘로스)이라는 단어를 삽입시켜, 파우로스, 종,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이라는 어순으로 써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단어를 두 번째로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 자신의 신앙 간증이며, 따라서 신학적 의미가 그 가운데 담겨져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한 이 사실에 주목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묵상하면서, 신앙의 도전을 받고자 합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분들은 생소한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종”이라는 단어 역시 그 가운데 하나 일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종”이라는 단어에 그다지 거부감이나 위화감, 또는 괴리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라고 뿌듯하게 말하면서, 자신의 종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사용하는 ‘종’이라는 단어는 결코 긍정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부정적인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헬라어 ‘둘로스’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번역하는 것이 원 뜻에 가깝다고 주장하듯이, 이 단어 자체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헬라 나라나, 로마 나라, 또는 유대 나라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δουλος)는 ‘끈으로 꽁꽁 묶다, 동여매다, 또는 책임과 의무를 지우다’ 등의 뜻을 가진 ‘데오’(δέω)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즉, 둘로스란 주인에게 묶인, 주인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수단이었고, 도구였습니다. 주인의 소유물로서 하나의 ‘재산가치’로 평가되었습니다. 따라서 매매가 가능했고, 여차하면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생살권도 주인에게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의 영화를 보면, 배 밑에서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는 노예들이 나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 뒤집혀지면 노예들은 그 배와 함께 그대로 죽게 됩니다. 그들에게 생명이란 없습니다. 배와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존재할 뿐입니다.

따라서 생각도 없습니다. 아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의지도 없는, 삶의 기개를 잃어버린, 최소한의 명예나 위신, 실리도 다 내던져 버리고 오로지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노예’ 입니다. 오로지 주인이 시키는대로 무조건 복종하며 따르는 것만이 그들에게 있을 뿐입니다.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속박당하고 감금당한 그것이 둘로스 입니다.

종 : ‘둘로스’적 이해

‘둘로스’가 가진 이런 의미를 신앙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 해봅시다. 믿음이란 주님 말씀에 무조건 아멘하며 순종하고 따라가는 거야! 자꾸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생기질 않아!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주님 말씀을 그냥 믿고 순종하는 것이 좋아!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는 것이야! 그러니, 그냥 믿어! 주님께 묶인 삶이란 바로 그런거야!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종, 노예이기 때문에, 그냥 믿으면 되!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물론, ‘둘로스’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대로 삶에 적용시켜, 믿음을 이처럼 굴종적이고, 맹종적, 맹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나라를 향하는 종말론적인 완성을 바라보며 능동적으로 달려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을 삶 속에서, 역사 속에서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이성을 이용하기도 하며, 믿음의 현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둘로서’의 문자적 이해와 적용에 빠져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절대복종하며, 무조건 믿으라!는 종교적 감성에 근거한 캐치 프레이즈에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여, 바울이 자신을 ‘둘로스’로 인식하며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종”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라는 용어가 종교적 의미로 그 당시 헬라 종교들 가운데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의 종교들이 자신들의 종교에 ‘둘로스’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왜 바울은 이 단어를 고집하였가, 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서의 문맥 가운데서, 더 나아가 성경 전체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종 : 에베드적 이해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바울이 ‘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본인이 유대인으로 유대적 신앙과 소명 이해, 믿음의 감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종”이라는 개념을 종교적으로 사용하였던 민족은 셈족 계통, 그 가운데서도 히브리 민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 백성들은 처음부터 “종”이라는 개념을 자신들에게 적용하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종’을 ‘에베드’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빠르게도 창세기부터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종”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종 아브라함”(창26:24)이라 부르시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 그 자체를 “종”이라 일컬었습니다(신32:36). 뿐만아니라, 왕도, 선지자도, 제사장도, 모두가 “종”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이 말하는 “종”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신, 택하셨다는 의미가 기본적으로 장착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종이란 택함받았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섬김을 위해서 택함을 받고, 소명을 받았다는 자체가 종입니다. 그러한 구약의 에베드적 자기인식을 둘로스 개념에 적용시킨 예가 신약에도 등장합니다. 예를 누가복음 2:29, 사도행전 4:29, 갈라디아 1:10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이란 무조건 믿고 따르라는 선동적인 구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택함 받았다’는 자기인식의 고백입니다.

바울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종”입니다. 바울은 특히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함을 받은 “종”이었습니다.

“종”을 하나님의 택함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그 다음에 등장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문장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의 랍비나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종’(에베드)라는 소명적 자각이 없었습니다. 전문적으로 직업화된 랍비였고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택함받은 ‘에베드’적 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나는 죽고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내 안에 산다는 둘로스적 종으로 자신의 실존을 고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특별히 택함 받은 “종”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자신의 주석서에서, “종”이란, “자신의 창작에 열광하는 천재가 아니라, 사명에 사로잡힌 ‘심부름꾼’이라고 해석합니다.

종탑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하여 맹신을 창작하는 천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180개 이상의 대형 교회들이 경매 사이트에 올랐다고 합니다. 교회 믿음이란 자기 창작이 아닙니다. 종이란, 자기 창작에 열광하는 맹신적 열광주의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말하는 종, 노예란, 성공을 위한 창작 구호에 부하뇌동으로 끌려가는 맹신주의가 아닙니다. “종”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으로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당신이 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에 사로잡힌 심부름꾼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당신이 택함을 받았다면, 사명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령으로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합니다(갈2:4).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갈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쳐서 그 사명에 복종시킬 수 있는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함으로 사명에 사로잡힌 심부름꾼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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