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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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 1-9절 강해설교 06 "말씀, 그 희귀성"

사무엘상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0-19 09:22
조회
69

사무엘상 3장 1-9절 강해설교

말씀, 그 희귀성

김산덕 목사

사무엘상 저자는 1장과 2장에서, 기적적인 사무엘의 출생 이야기, 그리고 그 당시 제사장 엘리와 그 가문의 타락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이야기를 써내려감으로써, 그 당시의 이스라엘 교회와 그들의 신앙적 타락을 지적하고, 경고하면서,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망의 빛을 드러내었습니다.

3장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열어가시기 위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사역하시는 모습을 저자는 기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직접 부르시는, 사무엘의 소명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보다 확연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 3장 1절 이하는 그런 내용들을 아주 명확하게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소명 : 말씀 시대로의 시작

조금 거친 표현이지만, 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태어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그리고, 왜 그를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말씀으로 부르셨는가? 질문해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무엘을 부르신 이유는 주의 말씀이 희귀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희귀하였기 때문에, 말씀으로 사무엘을 부르시면서, 이제 말씀의 시대를 열어 가시겠다는 주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참된 말씀이 온 백성들에게 전파되는 시대를 바라보았던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사무엘을 보내셨고, 세우셨습니다. 백성들이 각자 자기의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하여 사무엘을 보내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온 백성이 알더라”(20절).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각자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였던 시대였습니다. 각자의 주장이 있었던, 각자의 의견이 있었던, 각자의 이념이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각자의 정의로움은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의 공의는 살아져 버렸던 것입니다. 정작 있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을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실로 3장 마지막절 2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하여, 4장 1절에는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온”(콜)이란, 언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도 빠짐 없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희귀하였던 시대가 끝나고, “온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시대가 열였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지도자 사무엘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되는 세상으로 바뀝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세상은 180도로 바뀌어 질 수가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이념대로 이익집단을 만들어 패거리 정치가 만연했던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백성을 묶어 낼 수 있는 지도자, 사무엘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를 세우느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이고 인류의 문제입니다.

드물다: 희귀하다 :
말씀의 시장성

1절에서 저자가 주님의 말씀이 “희귀하다”(야카르)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각자의 소견대로 행하였던 시대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단어를 선택하였지는 그 의미는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이 단어는 값비싼 보석(삼후12:30), 귀중한(열왕하5:17) 것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실로, 값어치 나가는 아주 화려하고 중요하다는 뜻을 가진 용어로, 장사꾼들이 장사할 때 사용하는 상업용어였습니다.

따라서 ‘야카르’를 통하여 보석과도 같은 하나님 말씀의 귀중함을 뜻하는 1차적 해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저자는 이 용어를 통하여 그 당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품화하여 장사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시장원리에 의해서 좌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장원리가 무엇입니까? 소비자의 구매 성향에 따라서 상품을 만들어 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 상품을 시장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유행의 흐름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여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시장원리입니다.

말하자면, 제사장들이 자신의 성공과 사리사욕을 위해서 백성들의 입맛에 맞게 맞춤작업을 하여 하나님 말씀을 상품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시장원리에 의해서 가늠되어지는 현장을 하나님은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there were not many visions, visions were infrequent). 여기서 사용되는 히브리어(니프라츠)는 비집고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가 없다는 뜻을 가진 용어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시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가죽처럼 너무 완고해서,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번역된 용어는 ‘하존’은 보다(하자)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보는 것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찢고 들어 오셔서, 보여 주시고자 하였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가 없다는 것은 “자기 소견”으로 꽉 차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생각, 자기 논리, 자기 주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도무지 들어 오실 수 없는. 그 어떤 돌파구도 마련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소통의 통로가 막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십자가 예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말씀이 시장원리에 의해서 선포되고, 소비자 위주의 말씀이 설교된다면, 그래서 내 마음과 머리 속이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는 생각 방식, 나의 주장과 이념으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마음, 더나아가 예배와 교회에서, 세상 냄새가 물씬 풍긴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이런 세상이 되버 버렸을까요?

여러분
1절을 어떻게 시작합니까?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 다시 말해서 저자는 “엘리 앞에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엘리’로 말미암아 가로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상품화하고, 상품화된 종교생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상을 전혀 바라 볼 수 없는 완고한 세상 종교인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를 섬겨야 했습니다. 인기있는 한 사람의 영웅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인기 있는 제사장들, 목사들을 따라만 가는 영웅주의적 신앙 생활에서 탈피하십시오. 오로지 한 분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의 누움

이런 상황을 저자는 엘리와 사무엘을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명확하게 지적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엘리도 눕고, 사무엘도 누웠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눕는 자리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달랐습니다. 그들이 서로 달랐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눕히는 자리, 장소, 공간에 있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여기서 “눕다”는 행동이 단순히 ‘잠을 잔다’는 뜻을 가진 용어(야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샤카브)는 휴식하다, 앉다, 살며 거주하다, 관계를 가지다, 머물다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창세기 19장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롯과 두 딸이 동굴에서 살아가며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항상 누구와 관계를 가지며,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사느냐? 는 관점에서 서로는 달랐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삶을 누구와 관계 시키고 싶습니까?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 갈 것입니까? 그래서 누구 안에, 어떤 것에 삶을 머물게 할 것입니까? 엘리는 자기 것에 밀착했다면, 사무엘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밀착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 : 어두워지는 사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지 않는 사람, 그 분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 그분께 밀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주의 말씀이 희귀한 것이 되어 갑니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점점 어두워져” 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한 마음의 감동이 없기 때문에, 냉냉합니다. 그래서 어둠이 찾아 옵니다. 마치 안개가 삶 속에 서서히 스며들듯이 자욱하게 끼여 옵니다. 캐캐한 안개의 무거움이 마음 가장 자리를 차지합니다. 영혼이 깜깜해져 갑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대로만 세상을 살아 갑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갇혀지게 되고, 자기 생각에 갇혀 지게 되고, 자기 의만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어두워져 가고, 교회가 갈길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따뜻한 희망의 꿈과 환상이 좀처럼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말씀과 설교이 상품화되어 우리 영혼에 영적 흥분과 결단으로 다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워져가는 시대였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 대하여 당신의 인자하심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not yet gone out).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문법적으로는 완전히 갔다(gone, went out), 끝났다고 번역될 수 있는 형태의 단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는 우리는 “아직”(not yet)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해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칠흑같은 시대 였지만, 모두가 각자의 소견대로만 행하는 난장판과도 같은 시대였지만, 주님의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빛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희미한 등불이지만,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 등불 앞에 자신을 눕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어떠합니까? “각자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똑똑하다 못해, 이제는 독하여 살기가 등천하는 살인자들이 되어 버린듯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장춘몽과도 같은 자기중심적 양심과 인문학적 기준으로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여 이기적 집단을 형성하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무너뜨릴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시퍼런 칼날과도 같은, 마약과도 같은 감성적 논리와 미사어구로 이웃과 전통, 역사를 매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들은 아주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 착각합니다. 칼날처럼 남을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갑니다.

그곳에는 성령으로 감동되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하게 자신을 눕히는 순종은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자기 신학과 이념으로 자기 의를 주장하는 논리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과 그 말씀이 말하는 의가 무엇인지 전혀 고민도 하지 않고, 순종도 보이질 않습니다.

각자 자기의 이념에 노예가 되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눕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부르시는 하나님

4-9절에 걸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번이나 부르시는 그분의 모습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아마, 세번이 아니라 삽십번이라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끊임없이 찾아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희귀하다하여, 하나님 말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하여 손짓하시며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완고한 가죽과도 같은 마음을 찢고 들어오시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세상적 시장원리 중독에서 벗어나십시오. 끊임없이 세상적 성공으로 유혹하는 상업원리에서 벗어 나십시오.
세번이 아니라, 삽십번, 아니 삼백번이라도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항상 하나님의 불꽃 앞에 당신의 인생을 눕히어 머물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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