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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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14-15절 강해설교 04 "하나님의 나라"

마가복음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0-25 22:27
조회
86

하나님의 나라

막011415                                                                                                                                                                                                      201025 주일설교 /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을 계시면서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으시고, 그 시험을 이기신 내용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승리한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은혜를 얻게 되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록 유혹이 있을지라도 그 유혹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이미 획득된 이 복음의 시대를 주님 안에서 마음껏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요한이 잡힌 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만으로는 요한이 어떤 이유로 잡혔는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요한이 잡힌 이유에 대해서는 6장에서야 아주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만 ‘요한이 잡힌 후’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구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가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구절을 조금 더 살펴봐야 합니다. 여기서 ‘잡히다’로 번역된 헬라어 παραδίδωμι는 ‘옆에, 옆으로, 옆으로부터’ 등을 의미하는 παρα와 ‘주다’를 의미하는 δίδωμι라는 두개의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잡히다 외에도 ‘넘겨주다, 전해주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잡힌 상태로 머물러 있다’와 ‘전해져서 계속 이어가다’라는 중의적 의미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잡힌 후’라고 해서 시간적 의미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간의 설정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요한이 잡힘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이어져온 구약의 시대가 마무리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구약부터 이어져 오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어져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전의 시대가 일단락 되고 이후 새로운 시대로 전환되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또한 그 속에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구원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연속성을 가지고 흘러가는 것을 마가복음 저자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이라는 것은 ‘구분과 연속’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들도 복음을 만나면서 그 이전의 삶이 일단락되었고, 복음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시대를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었고, 실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주어진 놀라운 은혜를 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복음의 시대를 열어갑니다. 그런데 그 시작점을 어디로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고 마가복음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이 복음의 시대를 여는 첫 시작점으로 선택한 곳이 갈릴리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첫 사역지는 당연히 유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오셨다고 오늘 본문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요? 갈릴리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갈릴리로 오셨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구약의 예언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는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당시 그는 갈릴리 땅을 두로의 왕 히람에게 줘버립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의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갈릴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심지어 그곳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버림받은 것도 서러운데, 이방 땅 취급까지 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역사적으로도 고난과 아픔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패권 다툼을 할 때마다 전쟁에 휘말리고, 점령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갈릴리는 점점 가난하고 소외된 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지로 부와 권력이 집중된 기득권자들의 도성이었다고 한다면, 갈릴리는 말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소외된 촌구석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곳에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버림받고, 이방의 땅으로 불리던 가난하고 소외된 그 땅 갈릴리를 예수님이 선택하셨고, 그곳으로 오셨습니다. 본문에서 ‘오셨다’의 원문을 9절에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 원문의 의미는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메시아가 오셔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것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왕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 땅을 예수님이 기억하고 계셨고, 그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갈릴리로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인해 갈릴리는 더 이상 ‘이방의 갈릴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선택하시고, 새로운 시대 즉, 복음의 시대를 여시는 새로운 시작점 갈릴리가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난 날의 아픔과 슬픔, 상처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원치 않아도 그것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소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를 찾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의 종이었던 우리를 선택하셔서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복음의 시대를 열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셨고, 그것이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예언의 성취라면, 그 말씀처럼 뭔가 특별한 일이 시작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선동하여 힘을 모은다든가, 지배하고 있는 로마를 몰아내고 해방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갈릴리로 오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니 예수님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셔서 다른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 속에는 하나님의 복음이 즉시로 전해졌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마가복음 저자의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지금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때가 코 앞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매우 임박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백성들 앞에 와계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그들 앞에 와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나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입니다. 이 용어는 ‘다스리다, 통치하다’라는 동사인 바실류오(βασιλεύω)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상태, 즉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이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속히 결단하도록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굳이 명령까지 하시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반면 적극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인생의, 전인격의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는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회개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원문의 뜻은 자기 자신이 설득되도록 내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설득되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예수님과의 신뢰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개와 믿음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와 믿음은 항상 동시에 진행되고,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이는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이는 회개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믿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가지가 충족되어야만, 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는 모두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늘 감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감사와 동시에 회개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도우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이 종교개혁주일이자, 우리 부사고백교회 설립 8주년기념주일입니다. 이 뜻 깊은 주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부산고백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거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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