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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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7절 강해설교 05 부득불의 인생: "은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될 때 은혜다"

로마서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1-08 16:08
조회
45

부득불의 인생 :
"은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될 때 은혜다"

김산덕 목사

바울은 로마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 소개를 하고 난 후 곧 바로, 2절에서 6절에 이르기까지, 복음이 무엇인지, 아주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다른 “다른 복음”(ἕτερος εὐαγγέλιον)이 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란 :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천상의 하나님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이 지상 가운데로, 이 세상 안으로 들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하나님의 복음이 지상 안으로 들어 왔다는 것은 세상의 역사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성을 가졌기 때문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약속을 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사는 역사 안으로 들어 왔던 것이고, 그래서 당신 깊은 삶 속까지 들어와서, 당신의 삶에 관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천상의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지상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천상에 속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이 세상의 역사 속으로 들어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3-4절에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그리고 “성령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한 분 한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마치, 육신의 세계와 성령의 세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만나는 방식으로, 이 지상으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인생 육신 속으로 들어 오셔서, 우리와 관계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도 오셨기 때문에, 육신을 입은 나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내 마음을 감동케하시고, 성령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성령으로 내 삶을 송두리채 180도로 뒤 바꾸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경험 : 교차점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만나면서도 동시에, 성령으로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육의 엄청난 구원의 사건을 아주 분명하게 경험하였습니다.

이전에 그는 다메섹 도상을 뛰어다녔던 종교적 원리주의자였습니다. 종교적 열심으로 육체의 만족을 추구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종교적으로 육신적으로 방황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런 육신의 사람 바울에게 예수께서는 육신으로 역사 속에서 만나셔서, 성령으로 그를 만지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채 곤두박질 하듯이, 주님 앞에 꼬꾸라진 것입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육신과 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 가운데는 분열과 헤여짐이 경험되어 집니다. 지금까지 육신의 지배를 받아 왔던 삶이 이제로부터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으로 뒤 바뀌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런 경험을 하였던 바울에게 하나님의 복음은 더 이상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사변적이거나, 종교적 원리주의 또는 윤리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능력이었습니다. 실제로 만남을 일으키는, 그래서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마음의 군불을 지피는, 그래서 성령의 뜨거움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맛보고 경험한 바울은 자신의 인생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5절입니다. 제가 다시 번역하여 들려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은혜를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종을 위한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 주님의 현재화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분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던 이유를 “그분의 이름을 위함”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이름”이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존재와 인격, 특징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인식적으로, 즉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그분의 현존과 임재를 실제적으로 내 삶 속에서 체험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이름이란, 단순히 기능적이거나 도구적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그분의 살아계심을 삶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는, 볼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낸다는 의미와 뜻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저자는 39장 2절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더라.”고 증언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요셉을 보고 살아계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기에 형통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현재 실제로 요셉의 삶 속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한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은 사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직분자 : 만인 제사장

바울이 사도 직분을 받았듯이,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ἀποστολή; apostleship, 즉 직분이라는 단어는 ship에 해당합니다.) 직분이란, 교회 직분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직분을 가졌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누구의 남편으로,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빠로, 어떤 회사의 직원으로, 집사로, 장로로, 목사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분을 주신 이유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직분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하심, 현재화를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주님께서 살아 계셔서 통치하고 계시구나! 라고 느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현재화가 우리 삶 속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의 임재가, 그분의 현재화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이름을 위한다는 것은 믿음의 순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이 내 삶 속에 주님의 살아 계심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현재화가 어떻게해야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순종”으로 주님이 함께하시는, 주님의 현재화가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종”(휴파코에, ὑπακοή)이란 무엇입니까?

어휘적으로 보면 ‘밑에서 듣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듣고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으로 응답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순종이란 들음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깨어나는 것이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임재의 표징이며, 증언입니다. 실로, 여기에 선교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용어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기 위하여,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 순종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당신이 믿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주님께서 당신 가운데 역사하시고 임재하시여 계신다는 뜻입니다. 순종의 삶을 사십시오. 그것은 주님이 지금 현대적으로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증표입니다.

너희들도 그러하다!

그러면서 바울은 6절에서, “너희들도 그러하다”고, 전합니다. 5절에서 “우리가” 그러하듯이, 로마에 있는 “너희도 그러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더 나아가 이 말씀을 읽고 있는 부산고백교회와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우리도 이런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6절에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물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자랑할 것이 없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을 함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힘듬이 있고, 고생이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통치를 증언하는 “부득불의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득불의 삶을 살아가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울은 기도 합니다.
은혜와 평강, 헬라인들은 사람들과 만날 때 ‘카이레’(Χαῖρε, 은혜가 있기를)라고 말합니다. 카리스, 은혜는 특히 바울에게 죄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 구원이 중심의 뜻을 가집니다. 유대인들은 ‘샬롬’(평안하라)고 인사합니다. 샬롬은 히브리 구약에서는 단순한 평온을 뜻하기 보다는 질서를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하나님과의 올바른 질서가 있는 곳에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에서 일어납니다.

부득불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으로 구원받아, 올바른 관계질서를 회복하십시오. 그것이 은혜와 평안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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