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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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16-20절 강해설교 05 '부르심에 따르는 삶'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0-11-22 17:29
조회
12

부르심에 따르는 삶

막011620                                                                                                                                                                                                      201122 주일예배 /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는 내용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들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온전히 속하기 위해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하신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은혜를 매일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실 때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을 다룹니다. 하나는 시몬과 안드레가 배에서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개의 사건은 대상에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형태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동사들이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냥 흔히 있는 동사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 동사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저자는 두 사건을 동일한 형태로 기록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어떤 동사가 사용되고 있을까요?

그 처음 동사를 본문 16절에서는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시다가’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다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해변을 따라 지나가시다가(παράγων παρὰ τὴν θάλασσαν)’입니다. 이 부분을 원문으로 읽어보면 ‘παράγων παρὰ‘ ~을 따라 지나시다가’로 쓰고 있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서 παρὰ라는 음성이 반복적으로 들리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저자가 이 구절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표현함으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예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해변을 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따라 지나시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하셔야만 할 어떤 일이 있고, 그 일을 위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보가 16절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19절 말씀에서 ‘더 가시다가’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동사도 원문의 뜻이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표현들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걷고 계신다는 것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해변을 따라 걸으셨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 16절에서는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해변을 따라가 걸으셨던 목적은 ‘그들을 보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의 ‘보시니(ὁράω)’라는 이 동사는 보이는 대로 보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의를 집중해서 보셨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대상을 또는 그 대상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셨고 아주 세밀히 관찰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과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주의 깊게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들의 일상 가운데로 오셔서 그들의 행위를 면밀히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을 보셨던 그 예수님께서 지금의 우리들도 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는 우리 각자를 눈여겨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여러분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여러분을 보고 계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 눈길 안에 머무는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님은 다른 두 장소에서 다른 두 형제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전에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딱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보았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17절에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내용을 20절에서는 ‘부르시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들을 보신 것은 그들을 부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 뭔가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단순히 ‘나를 따라오라(δεῦτε)’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따라오라(δεῦτε)’라고 명령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물고기를 잡는 과거의 어부의 삶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을 전하는 전혀 다른 삶, 즉 새롭게 재창조된 삶을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은 과거의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이야말로 새롭게 재창조된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주님이 부르신 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은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뜻을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버려두고 따랐다’고 합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뜬금없는 말을 하며, ‘나를 따라오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버려두다(ἀφίημι)’라는 동사는 말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에게 있어서 그물은 어부인 자신들의 직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물에 의존해야 할 만큼 중요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버려둡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가정의 가장이며, 자신들이 성장하는 동안 의지했었던 아버지를 버려둡니다. 이것은 그들이 과감한 결단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결단은 그들의 삶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버려둘 수 있는 결단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보시는 그 눈빛과 부르시는 음성에서 강한 확신을 얻을 만한 그 무엇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즉시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버려 두는 결단을 했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보다, 자신들을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그 은혜에 반응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예배에 참석하신 것은 이와 같은 믿음의 결단 있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고, 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여러분들을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주님의 그 은혜에 여러분들이 반응하고 순종하였기에 이곳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이와 같이 부르심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결단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매 순간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네 사람을 부르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모험과도 같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본문 18절과 20절에서는 각각 ‘따르니라’(ἀκολουθέω)와 ‘따라가니라’(ἀπέρχομαι)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같은 동사처럼 여겨지지만 원문에서는 두 개의 동사가 다릅니다. 원어적 의미로 보면, 18절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0절은 ‘있던 곳에서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본래 있던 곳에서 나와서 예수님께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예수님에게로 나온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발붙이고 살았던 환경을 떠나 전혀 다른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의미는 그 시대를 떠나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로의 전향을 말합니다. 그들의 삶이 새로운 시대의 삶, 즉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자신이 머물러 있는 자리를 벗어나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과감한 결단을 통해 버림을 실천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시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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