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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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 "그분과 함께하는 평강" 김산덕 담임목사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2-01 13:43
조회
73

그분과 함께하는 평강 (성경이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김산덕

오늘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을 축복하는 축복기도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말하자면, 평강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야, 모든 일이 평강 평안하게 될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평강”은 우리 모두가 기도하며 바라는 소망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개정은 “평강”으로 번역하지만, 공동번역, 또는 현대인 번역 성경은 평강을 평화, 평안으로 번역합니다. 말하자면 한글로 평강이나 평화, 평안, 또는 화평으로도 번역되지만, 사실 원어상으로는 똑같은 동일한 단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히브리어 샬롬이며, 헬라어 에이레네 입니다.

따라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성경이 말하는 평강 또는 평화에 관하여 간결하게 묵상하는 것입니다. 평강/평화로 번역되는 단어들이 가진 깊은 뜻은 물론, 성경의 저자인 성령 하나님께서 샬롬, 또는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깊은 뜻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어보시면 평강의 하나님, 평강의 주, 평안의 성령, 평화의 왕 등 의미적 표현들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평강을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으로, 따라서 오로지 하나님만이 참 평강 평화를 줄 수 있는 분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성경은 주님의 ‘평안’, 주님의 평강,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아주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14:27).

세상의 많은 정치꾼들이나 철학가들도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그러한 평화와는 다르다고 말입니다. 즉,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주의자들이 말하고, 그들이 이상적으로 만들어 내고자하는 평화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예를 들자면, 그 이유를 요한은 16장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여기서 주님은 “평안”을 “내 안”(in)으로 제한시킵니다. 내 안에 있기에 평안이 있고, 그래서 기쁨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in)도 승리의 기쁨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 평안이라고 합니다(16:33). 어려운 삶 속에서도 이미 이겼다는 확신으로 살아낼 수 있는 상태를 평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 새번역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힘든 삶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믿음, 그래서 이겼다는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평안을 가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평안한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화평케하는 자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화평케할 수 있는,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평화스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안의 사람이 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먼저 세상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평화, 평강, 평안, 화평 등과 같은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마치 고요한 아침과도 같은 조용함, 어떤 휴식적인 상태, 전쟁과 다툼이 없는 조용한 상태, 또는 그런 감정을 평화스러움, 평안함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누군가 이기고 지고 하여 싸움이 끝난 상태를 가리켜 사람들은 평화가 찾아 왔다고 표현합니다. 만약 이런 것이 평화라고 한다면, 이런 종류의 평화는 전쟁이라는, 누군가를 짓밟고 나서야 찾아오는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이기고 나서야 찾아오는 일순간의 안도감을 세상 사람들은 평화라고 말합니다. 1등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안도감 승리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는 강자의 논리입니다. 강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평화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전쟁이나 폭력 문제를 다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평화는 그들에게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평화를 항상 미래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 내가 이겨서 평화를 이루겠다, 1등이 되면 좋겠다.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평화가 찾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는 너무나도 정치적이고 당파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가 말하는 근본원리는 힘이고, 자본입니다.

화평케하는 자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요? 먼저 생각과 사상을 표현하는 언어적으로 접근한다면 오늘 본문에 나온 평화는 묶다, 하나 둘 셋 넷을 이어서 엮어 전체를 만들어내는, 마치 완전을 이룬다는 뜻이 강합니다. 나와 너를 서로 엮어서 묶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평화를 철저하게 관계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어디에 묶어야 겠습니까? “내 안”이니까, 우리는 주님 안으로 엮어져야 합니다. 평강의 주님께 내 인생의 연결 고리를 걸고 묶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영적 만족도는 급상승합니다. 단순히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그런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힘과 생명력이 넘치는 아주 역동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옆 사람과 싸우고 나면 관계가 서먹서먹해지고, 별로 적극적인 마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계가 좋아지면, 같이 밥도 먹고 싶고, 선물도 해 주고 싶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뭔가 적극적으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마음에서 그 사람 생각이 자꾸 납니다. 이것이 온전한 관계 회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적극적이고 역동적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괜히 뭔가 하고 싶고, 이웃을 보면 뭐 하나 더 주고 싶고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두근두근 거리는 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화염검으로 둘러쌓였던 생명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능동적이며 두근두근 거리는 생명력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평화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니라 동적인 것 입니다. 평화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의 세계이며 그런 상태입니다.

마음에 뭔가를 하고 싶어서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 뭐라도 하면 다 잘 될것 같은 믿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라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샬롬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은 25가지 이상의 다양한 의미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상업적 번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는 건전하고 성숙한 건강으로 나타나며, 충만, 즉 살려고 하는 의욕으로 충만한 만족으로도 나타나며, 깨달음으로 영적으로 눈이 열리는 지혜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흑암에서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인도되는 구원과 승리 등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란 이렇게 다양합니다. 그래서 멍하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평화가 아닙니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아닙니다.

나를 끊임없이 하나님과 엮어서 그분으로 이어가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25가지 이상의 다양하고 풍성한 평안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평강의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25가지 이상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샬롬, 히브리어는 샬람에서, 완성하다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과 내가 엮일 때, 내 삶은 완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완전이란 내가 주님과 엮이는 것 자체가 완전입니다. 이 완전함이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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