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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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4장 3-11절 강해설교 09 "자기를 위하여 신을 도구화하는 사람들"

사무엘상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2-22 08:49
조회
68

하나님을 도구화하는 사람들

김산덕

매월 세번째 주일은 구약성경 사무엘을 강해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주의해야 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뜻을 알고자 할 때, 그 본문이 가지는 문맥(context: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들과 함께)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문맥을 떠나서 해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자의적 해석이 되어 버립니다. 말하자면, 문맥을 떠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1차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답하기를, 패배한 이유는 그들이 회개의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 합니다. 그들이 그 동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회개의 기도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전쟁에 능하신 주님께서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이 실패합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승리합니다. 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들은 이런 설교를 아주 생각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 드립니다. 왜냐하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당연한 소리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종교성 짙은 선동적인 말에 사람들의 감성은 자극을 받습니다. 너무나도 그럴싸하게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기도해야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문맥을 따라 읽고 해석한다면, 사무엘상 4장 1-3절에서 과연 무엇을 근거로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무엘상 4장을 기록한 저자가 의도하고 목적하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회개해야 한다”고,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문을 떠난, 본문에 근거되지 않은 자기식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감성적인 말이나, 또는 이념적인 구호, 종교적인 선동 문구나 글귀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판단이 흐려 집니다. 세상은 틀리다 맞다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앞뒤 문맥을 따라서 읽고, 그 가운데서 설교자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부산고백교회의 설교는 항상 문맥에 즉한 설교를 하고자 노력하며, 연구합니다. 함께 공부하여 바른 깨달음으로 변화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절은 제1차 아벡 전투에서 패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1-3장의 주인공이었던 사무엘의 모습이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또한 돌연히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4장부터 시작됩니다.
왜? 사무엘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지, 왜 전쟁을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성경의 저자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왜 졌는지 그 이유를 본문 속에 깊이 감추어 놓고, 독자들이 보물을 찾듯이, 꼭 찾아서 그 이유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써내려간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제1차 아벡 전투에서 패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왜 싸움에서 졌는가? 이것은 신학적 난제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습니다.

제1차 전쟁에 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영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어찌하여 우리가 블레셋에 패하게 되었는가” 라고 이유를 찾으면서, 그 해결책으로 언약궤를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본문 3절을 유심히 보시면, 이 장로들이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 너무나도 이기적인 판단을 하였다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3절 안에 “우리”라는 대명사가 5번이나 나옵니다. 특히 두 번째 “우리에게로” 번역된 ‘엘레누’는 ‘우리를 위하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아주 강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번째의 “우리 중에”는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안에 부적처럼 넣어 놓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궤를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뜻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궤라도 끌어다 사용하겠다는 지독하게 승리주의 질병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스라엘 역사를 톫아 보시면 여호와의 궤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승리하였던 적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민수기 14장 44절에서는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하지 않아서 전쟁에서 패하였다고 기록하며, 여러분들이 그 무엇보다도 잘 아시는 여리고 성 함락 사건에서도 여호와 궤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수6장).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여호와의 궤는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지만, 오늘 본문의 주체는 장로들입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가져 온 것입니다.

사실, 장로들이 여기서는 사무엘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이길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궤까지도 끌어다 사용하겠다는 심보입니다. 수단과 도구를 가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등하기 위하여는 누구든지 사용하고 짓밟고 올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성취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만능 통치약으로 생각하지 마십이요. 기복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은 나를 세속적인 종교인으로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손에 잡지 마시길 바랍니다.

5절로 가보시면, 장로들의 말 대로 언약궤가 진영으로 들어오니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고 보고합니다. 여기서 “외치다”는 단어는 “기뻐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백성들이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가져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그들이 원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로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잘 읽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언약궤를 가져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내린 처방전의 기준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들”이란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 모인 최고 의결기관입니다.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백성이 살 수가 있습니다. 포풀리즘에 휩싸여, 백성들을 기뻐하게 하는 인기성 발언만 한다면, 그런 지도자들은 백성을 좀먹는 기생충입니다.

사실, 본문에 나오는 “장로들”은 나중에도 사무엘에게 찾아가서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니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장본인들입니다(삼상8:4). 백성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기뻐게 하는 장로들이었습니다. (인본중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인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1차 전투에서 패배하여 돌아온 백성들을 보았을때, 장로들은 적어도 ‘사무엘’을 찾아서야 했습니다. 그를 찾아서 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기뻐하는 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청중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목사들이 만약, 교인들이 듣기 좋은 말, 감성을 자극하여 아멘주의자들을 만들어내는, 그래서 인기만을 추구한다면 그 교회는 승리주의, 성공주의에 오염된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7-8절을 보시면, 여하튼, 하나님의 궤를 가져왔다는 소식을 들었던 블레셋 사람들도 두려워 떨며, 큰일났다. 우리에게 화로다, 라고 체념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이제는 블레셋을 이길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입니다. 그런데 장로들의 처방전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승리할 줄 알았는데, 이스라엘은 또 패하게 됩니다. 참담합니다.

그러나 문맥상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3장 마지막에 여호와의 말씀에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고 선언했는데, 4장으로 가자마자 여호와를 말씀을 잊어버리는, 게눈감추듯이, 말씀을 찾지 않는 이스라엘 모습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지독하게 자신들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주의”, 일인칭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성공을 위한 하나님으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여, 성경의 저자는 11절에서 간결하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았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을 때, 하나님 역시 그들의 편이 아닌 듯이 보일 정도로, 복음은 엄격하고 냉정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너무 나의 성공을 위해서 살다 보니, 하나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또한 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 앞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일수 있습니다. 사람이 당황하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생각하여 주시고, 기억하여 주시는 그런 것이 복음이 아닙니까?

빼앗겼다: 닐르카흐는 니팔형 동사입니다. 강제성보다, 자발성의 뉘앙스 스스로 죽다. 등입니다.

곁으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겨 탈취당한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적이고 오의적인 의도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블레셋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한 번 두번이나 싸워도 이길 수 없는 블레셋 안으로 하나님께서 몸소 들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인들을 벌하시면서, 동시에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냥 밉다고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승리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패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언약궤를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림으로서 때로는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자신의 버림을 선택을 하셨습니다.
골고다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교환은 더 취소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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