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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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29-34절 강해설교 08 "저물어 해 질 때에"

마가복음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2-28 16:09
조회
66

저물어 해 질 때에

막012934                                                                                                                                                                                                                          210228 주일예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눠볼 본문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지난 본문과 연속선 상에 있습니다. 지난 본문에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던 주님이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셨고, 그 사람에게서 그 귀신을 쫓아내시는 내용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떠나자 예수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29절이 이어집니다. 우리말로는 생략이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곧’이라는 단어가 포함이 되어서, 예수님이 지체하지 않으시고, 회당에서 나오셔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회당에서 사람들과 그에 관한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시몬의 집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그렇게 즉시 가셨을까요?

혹자는 이 내용을 통해서 시몬과 안드레가 예수님과 야고보, 요한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그 어디에서도 시몬과 안드레가 예수님의 일행을 초대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 집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곳에 가셔야만 했던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해답의 열쇠가 되는 ‘들어가시니’라는 동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들어가시니’로 번역된 단어는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단어, ‘가다’ 또는 ‘오다’를 뜻하는 ‘ἔρχομαι’입니다.

우리가 지난 본문들을 가만히 되새겨보면 예수님이 이 동사와 함께 등장할 때마다 어떤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9절의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는 세례를 받으셨고, 14절 요한이 잡힌 후에는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21절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는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은 그곳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며, 그것에 대한 기대를 해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그리고 여러분의 삶 속에 놀라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여려분 그것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느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부산고백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오심으로 매순간이 기대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더니, 우연 같지만 공교롭게도 그 집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었고, 예수님이 그녀의 열병을 고치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 내용을 저자인 마가는 짧고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가가 이 내용을 기록한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중에서 두 가지 정도만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31절의 동사들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동사가 무려 5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나아가다’, ‘잡다’, ‘일으키다’, ‘떠나다’, ‘수종들다’ 입니다. 그 중에 앞의 세 동사는 예수님의 행하심을 표현하고 있고, 뒤의 두 동사는 그 결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직전의 사건과 병행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 한 남자의 귀신들린 문제를 해결하신 것과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의 병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 반복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 내용들을 통해서 병을 고치시고 다시 일상으로 회복시키시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시키시는 일이 또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일상이 어그러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짧게 보면 코로나19로 말미암은 병든 일상을 살고 있고, 길게 본다면 이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면서부터 죄로 물든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살아가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잡아 일으키실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대하기는 지금 병원에 계시는 우리 이영자 집사님, 우리는 예수님께 이영자 집사님에 대하여 여쭙고, 예수님이 나아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 몸속의 병이 떠나고 집사님이 교회를 섬기시는 회복이 속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시몬의 집에서 이 일이 있은 후에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예수께 데려왔는데 33절에 의하면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온 동네가 그렇게 모여든 때를 본문에서는 ‘저물어 해 질 때’라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해 질 때에 찾아 왔을까요? 이왕이면 낮에 찾아 오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사람들이 낮 시간을 다 보내고, 쉬어야 하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약속이나 한 듯이 온 동네가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그 이유를 짐작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낮에 찾아오지 못한 이유는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함께 교독 했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네 번째 계명이 바로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항목들을 세세하게 만들고 그것들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저물어 해 질 때에 병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그 집 문 앞으로 모여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유라면 예수님이 행하셨던 앞의 두 사건을 어떻게 봐야합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들은 모두 안식일에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안식일에 있었던 이 내용을 숨기기 보다는 오히려 정확하기 기록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읽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놀랄만한 내용이 아니지만 당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이 복음서를 읽을 처음 독자들이 있었던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마가복음을 공부해 나가면서 보겠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송사할 목적으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엿보는 일들도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내용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내용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용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복음 그 자체이시고,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여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이후 행하시고, 가르치시는 일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일들이었고, 그 모든 일들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마가복음 저자는 이 내용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된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율법의 틀을 깨뜨리시고, 그것을 다시 바로 세우고 계시는 다소 파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다소 자신이 또는 타인이 만든 틀에 갇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반경이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물어 해 질 때까지 기다리던 유대인들처럼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주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사고나 인식, 관습이나 편견 등의 틀에 갇혀 계시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도 그와 같은 틀에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저물어 해 질 때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맞아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로 나오신 부산고백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주일’이라고 하는 오늘에만 머물지 않기 바랍니다. 언제 어디든 계시는 주님만을 생각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 여러분의 문제를 즉시로 내어놓고, 문제를 해결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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