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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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7절 강해설교 11 "믿음: 선물에서 믿음으로"

로마서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3-07 15:52
조회
58

믿음이란 무엇인가?

- 선물에서 응답으로 -

김산덕

지난 시간에 우리는 1장16절 “나는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바울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17절을 중점적으로 묵상하면서, 이 말씀이 가진 깊은 은혜를 깨닫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로마서 1장 16-17절이 로마서 전체를 요약해 놓은 중요한 대목으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특히 17절에 나오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의 핵심 말씀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바울이 구약 하바국 2장 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식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삶을 살리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를 구약적으로 표현하자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 다르게 말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뜻이 과연 무엇인지, 성경의 저자 성령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를 묵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장 전반부의 구조에 먼저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1장 1-7절까지 인사를 끝낸 바울은 8-17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주어가 “나” 즉, “내가” 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먼저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9절 “내가 섬기는” 10절 “내가” 한글로 생략되어 있지만, “내가 얻기를 원하노라.” 11절 “내가 원하는 것은” 12절 “내가 얻으려 함이라” 13절 “내가 가고자 한 것은” 14절 “내가 빚진 자라” 15절 “나는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각 절마다 “내가” 내가가 주어로 등장합니다.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가”라는 주어가 16절 이후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를 앞세워 로마서를 써내려 왔던 바울이 16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내가”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나는” “내가”라는 1인칭 주어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나” “내가” 라는 주체적인 자아 중심적인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라는 이 고백 안에 자신을 온전히 녹여 스며들게 하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내가”가 드러나기 보다 오직 복음만이 더욱 드러나기를 원한다는 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나보다도, 복음만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적어도 복음 안에서는 “나”란 존재가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만이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이런 바울의 고백이 깊이 배어있는 곳이 16절입니다.

실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간증하기를 “내 자랑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31). 그래서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갈2:20)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복음이란 인간적 자기자신을 “근절시키는” 힘이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복음 안에 자신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성경은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게하는, 그래서 시민사회에서 무책임하고 소극적이며,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잘못된 기독교 윤리라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예를 들면 당신이 좋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좋아! 이 말은 자기 주관도 없는 맹목적인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능동적인 표현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나는 복음(예수 그리스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을 때, 이것은 단순히 나 자신이 녹아나 없어졌다는 소극적 표현 또는 자아상실의 표현이 아니라, 그것은 복음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연한 결단이며, 적극적인 자기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나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복음의 그늘 가운데 자신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복음 안에 내가 녹아나서, 오로지 복음(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게 하는 삶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복음=하나님의 능력=하나님의 의=믿음

그래서 정리하자면, 바울이

16절에서 “이제 내가 복음 안으로 사라지는” 그래서 오직 복음(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삶을 고백하였다고 한다면,

17절에서는 “이제 내가 믿음 안으로 사라지는” 그래서 오직 믿음만이 드러나는(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7절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에는 두 개의 전치사가 사용됩니다. 먼저는 “믿음으로”인데, ‘으로’는 ‘~으로부터(나오다)’를 뜻하는 에크(ἐκ: from)이며, 그 다음은 “믿음에”인데, ‘에’는 ‘~을(를) 향하여’를 뜻하는 에이스(εἰς: to)라는 전치사 입니다. 말하자면 믿음이 어디로부터 나와서(출처성) 어디로 향하는지(목적성)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믿음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발현된 믿음은 인간이 그것을 믿고 응답하는 믿음으로 향하며,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두가지 요소가 신비하게 작용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며, 또 하나는 그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인간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은 항상 인간의 응답과 반응을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복음 안에서 내가 죽고 복음만이(예수) 드러나기를 원했듯이,

믿음 안에서 내가 죽고 믿음만으로 살겠다는 영적 논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믿음 안에 사는 것이란,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나타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인용하였던 하바국 2장 4절이 기록되어졌던 시대적 정황을 아시나요?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이 의로우시고, 전능하신 분이라고 한다면, 왜 우리가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까?라는 절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삶이 녹녹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선지자 하바국이 듣고 깨달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처한 정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라는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이야기거리로 들려왔습니다. 십자가는 어리석음이요, 패배요,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어리석은 십자가 복음에 승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큰 교회를 세우고, 큰 교육관을 세우고, 좋은 직장에 좋은 집에 남들보다 잘 살아야 그것이 복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십자가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낮아지고 섬기고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이야기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복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바울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모순을 필연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패배가 승리가 되는, 죽음이 살아감이 되는 논리가 복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 안에 자신을 녹여버렸습니다. 즉 믿음 안에 자신을 녹여버리고, 내 생각 보다는 복음의 논리, 믿음의 논리로 살아가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제 “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 이후로 자기 자신을 주어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보다도 오로지 믿음으로 살았던 한 분을 기억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 내 생각보다도, 당신 생각,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의 사건입니다. 자기가 십자가 안으로 사라졌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믿음이 우리 삶 속에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도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제 그 믿음에 반응하시고 응답하십시오. 응답하심으로, 그 선물이 가진 축복의 능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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