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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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35-39절 강해설교 09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3-28 16:08
조회
23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013539                                                                                                                                                                                                                                       이상필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가신 예수님이 열병으로 누워있었던 시몬의 장모를 잡아 일으키셔서 회복시키신 내용과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에 시몬의 집 문 앞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을 데리고 모인 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가 그 때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회복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 늘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시작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거기서 기도하신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내용을 복음서에서는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강조하는 교회의 경우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적을 종종 인용해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일까요? 우리는 이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 저자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우리말로 표현된 ‘새벽 아직도 밝기 전’의 원문의 뜻을 보면 ‘아주 이른, 여전히 깊은 밤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밤에( ἔννυχος)’이라는 단어가 여기서만 딱 한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 전체를 찾아봐도 여기에 유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저자 마가가 이 단어를 딱 한번 이곳에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히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밤에( ἔννυχος)’이라는 이 단어를 조금 더 세분화 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안에’라는 ἔν(엔)이라는 단어와 ‘밤’이라는 νυχ(누크)라는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밤에’ 이렇게 번역이 되어있는데, 그 뜻을 원문에 맞게 번역하자면 ‘한밤중에’가 더 정확하고, 이를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밤에 깊이 푹 잠겨있는 상태’ 또는 ‘밤에 갇혀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하는 ‘밤’과는 달리, 그 무엇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푹 잠겨서, 그 어둠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당시의 시대상을 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당시의 시대를 마가는 ‘한밤중’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사용함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밤 속에 푹 잠겨 있는 그 때에 예수님이 일어나 나가시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데 ‘일어나다’와 ‘나가다’ 등 두 개의 동사를 연이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장에서 굳이 ‘일어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나가다’만 사용해도 예수님이 일어나서 나갔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일어나다’라는 이 동사를 마치 반드시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듯 그 자리에 꼭 채워 넣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자인 쓴 원문의 ‘일어나다’의 동사의 원형은 ἀνίστημι(아니스테미)입니다. 이 동사는 일반적으로 ‘일어서는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동사가 특별히 오늘의 본문 안에서는 ‘누워있던 상태에서 있어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저자는 예수님이 누워있던 상태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저 뒷부분에서 사용해야 할 이 단어를 미리 끌어다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짧은 표현을 통해서, 온 세상이 밤 안에 푹 잠겨 누워 있는 그 때에 오직 예수님만이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나셔서는 그 어둠을 박차고 나가시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덤에 누워계셨던 예수님이 죽음의 어둠을 박차고 일어나 무덤 문을 열고 나가신 것과 같습니다.

한밤중에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나 박차고 나가신 예수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어디였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곳을 ‘한적한 곳’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한적한 곳은 구체적으로 어디라고 특정할 만한 힌트가 없습니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그 한적한 곳을 ‘광야(ἔρημος)’라고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또 다시 광야로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병자를 낳게 하심으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각인시키셨습니다. 그 소문이 마을에 퍼져 온 동네가 시몬의 집 문 앞에 모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뒤로하고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또 다시 광야로 나가셨을까요?

35절의 내용으로만 보면 ‘기도하시러’ 나간 것처럼 생각 할 수 있지만 그 근본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미 앞에서 광야에 대해서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광야는 어떤 장소였습니까? 예수께서 처음 광야로 나아가셨던 그 때, 그 광야는 새로운 시대, 복음의 시대를 여는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은 후 또 다시 나가신 광야에서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노예로 전락한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내용들을 통해서 예수께서 광야로 나가셨던 그 두 번의 공통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광야로 나가실 때마다 큰 획을 긋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인 즉, 이제 또 다시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일까요? 우리가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무엇을 기도하셨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럼 잠시 질문을 바꾸어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요?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본절에서 처음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기도’라고 번역된 헬라어의 뜻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말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바꾸다’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나의 바램을 아뢰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의 바램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기도의 양면성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도의 내용을 37-38절의 말씀을 미루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37절에 시몬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와서는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물론 예수님도 자신을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위한 주님의 바램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과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마을로 가셔서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확고히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인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을 위해 기도하셨고, 또한 그것이 광야를 통해 암시된 또 다시 행하실 구체적인 일이었습니다.

광야를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여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목적지는 ‘가까운 마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도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을로 번역된 κωμόπολις(코모폴리스)라는 단어도 신약 전체 중에 여기서만 딱 한번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법으로 유지되는 도시’라는 의미로, 정부에 의해 세상의 법으로 운영되는 마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으로 해석하자면 어둠 속에서 일어나 박차고 나가신 부활의 주님이 아직 어둠 속에 잠겨있는 세상에 부활의 소망, 즉 복음을 선포하실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39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심으로, 회당의 주인 그리고 백성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시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둠에 푹 잠겨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더욱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교회 마저 그 어둠 속에 침몰 되어가는 것 같은 모습을 종종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고, 맥이 풀려버리기도 합니다. 참 막막하게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런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한줄기 빛과 같은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두움 가운데서 머물러 계실 수 없어서 어둠을 박차고 일어나신 부활의 주님께서 계시며, 그 부활의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우리에게도 어둠 가운데서 일어날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가 계속해서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고, 그의 삶을 통해 주님은 은혜의 빛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통해 주님의 생명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주역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땅 위에 복음을 선포는 주님의 사역을 이어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이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내가 이를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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