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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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9-23절 강해설교 13 "자연적 하나님 인식은 제로"

로마서강해
작성자
confessing
작성일
2021-04-04 15:55
조회
30

자연적 하나님 인식은 제로

김산덕

김보현 선생님이 유년주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이야기하다가,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시는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부산고백교회 어린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왜 안보여요? 안 보이는데 어떻게 계시는지 알아요? 보여 주세요. 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치 인간이 할 수 있는 본능적인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었던 것이죠. 그러자, 어린 친구 민하가 믿음의 한 마디로 일갈했습니다. “안보인데잖아! 안 보인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래!”라고 일언지하에 그 상황을 정리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 24절에는 하나님은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기분적 존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님이 마음에 계신다라고 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단순히 마음적 문제 심리적인 문제로 평가절하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심지어 교회 목사나 신학자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를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 이해하고 정리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성적이며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과 믿음 이야기를 성경이나 교리나 신학의 이야기로 접근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적 문제로 심정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이해하기가 쉽고 간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욕심많은 현대인들 가운데는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수단으로 종교를 찾고, 또는 만족되지 않는 불안하고 허탈한 마음를 달래기 위하여, 또는 자기 수행을 위한 명상적인 의미로 종교를 이해하고 찾는 자들이 적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종교란, 인간들이 심리적 만족을 얻기 위하여 만들어낸 종교적 심리 현상과 그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실체가 없는 우리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기분적 존재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19-20절.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즉 영원한 신성과 능력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것입니다.

자연적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우리의 인식 능력으로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신성과 능력을 만물 가운데 나타내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안 보인다고 말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어 보여주신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자연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신학 용어로 “자연적 하나님 인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알게 하셨지만 알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우리로 당황하게 하는 것은, 바울이 21절로 이어가면서, 알만한 것들이 보여서 알기는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었고, 하나님의 썩어지지 않을 영광을 썩어질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자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를 드러내 보여 주시고, 알게하셨습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보여 주셨지만, 알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분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알기는 압니다. 알기는 알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허망하고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져 갈 뿐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비록 하나님께서 만물 가운데 자신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도록 보여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알지 못하고, 오히려 알 수 있는 능력으로 허망한 짓꺼리만 한다는 것입니다. 알아도 영화롭게 감사하게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사도 바울선생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자연적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은 제로

그런데 어떤 목사들, 또는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말합니다. 19-20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자연이나 역사 가운데서, 더 나아가 민족이나 국민, 국가 통치 등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 하나님의 계시, 즉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양날의 검과 같이 아주 위험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주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을 알 수 있다면, 이것은 자연이나 역사, 민족, 국가 통치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드러내신다는 것이며, 그곳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천황을 현인신(아라히토카미)이라고 숭배하기도 하였으며, 일본 민족은 신의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외국 서양 세력을 아시아에서 쫓아내고, 천황과 일본을 중심으로 번영시켜야 한다는 사상에 휩싸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 게르만 민족은 다른 민족들보다 우수하며, 우월하기 때문에, 게르만 민족에 의한 재통일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하면, 히틀러를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자연적 하나님 인식”을 주장하게 될 때 나타나는 극단적 예가 됩니다. 민족 사명론은 위험합니다. 제국주의적 발상입니다.

그래서 그때 일본의 많은 목사들 신학자들, 독일의 많은 목사들 신학자들은 천황이나 히틀러를 구세주로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허망하게 미려한 마음으로만 알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면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 가운데 자기자신을 드러내셨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감사하게 알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솔라 그라티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께서 다메섹을 향하는 바울에게 일방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분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을 성령님을 통하여 만났기 때문입니다.

19절 20절을 기록한 이유

이런 은혜를 전제로 생각하면, 바울이 19절 20절을 기록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세상에는 실로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드러내시는 것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잘 모르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보니,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 나타내심, 자기계시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자연적 하나님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실로 오늘 본문은 그러한 의미와 문맥에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바울은 8절 이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 그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거룩한 사실을 그는 경험했고, 그런 거룩한 신앙의 경험을 근거로 지금 이 로마서를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는 바울의 증언이요 간증입니다.

따라서 19-20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받은 은혜라는 대 전제 아래서 써여졌다는 것입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 사역에 의해서 창조된 자연과 인간 사이에 기본적인 관계가 허물어졌다는 사실과 그 관계 붕괴로 말미암아 인간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제야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났다는 사실을 입각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빼놓고서는,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등의 올바른 관계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에게 자신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인생이 보여오고, 사랑하는 사람이 보여오고, 가정이 보여 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영화롭게 알아야 되고, 감사하게 알아야 합니다.

철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안다고 하지 마십시오.

죽었던 몸이 새롭게 소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사(예배, 성찬)하는 것이며, 그렇게 새로운 영생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가운데서만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식적으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정한 예배 자리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것의 가능성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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